요즘 친정엄마는 면역력이 약한 자식들 때문에 걱정이 많다. 일단 한집에 사는 손주는 어지간해선 약발이 듣지 않는다. 신종플루가 유행할 때 약 처방을 잘못 받아 그렇게 됐다. 아들처럼 여기는 맏사위는 큰 수술을 두 번이나 했고 둘째딸은 툭하면 대상포진에 걸리는 약골이다.

반면에 나는 그런 친정엄마가 걱정이다. 팔십이 넘은 연세에다 폐에 물이 차는 병이 있어서다. 노인정과 노래교실은 진작 발길을 끊었으니 무슨 낙으로 하루하루를 견디시는지, 혹시 노인 우울증이라도 오면 어쩌나 노심초사다.

그런데 딸들은 틈틈이 낮잠을 자야 스케줄을 소화하는 내가 걱정이란다. 조금 전에도 물을 많이 마시면 코로나-19에 좋다고 톡을 보내왔다. 자기들은 면역력이 너무 좋아서 문제라고 호기를 부린다. 아마 내가 걱정을 할까봐 그랬으리라.

아프지 않고 살 수 없는 게 삶이고 전염병으로 놀랄 일들도 계속 반복될 거다. 휘둘리지 않고 몸과 마음의 힘을 키우는 방법은 없을까.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고미숙 지음, 북드라망). 그 시절 허준은 병처럼 낯설고 병처럼 친숙한 존재를 어떻게 봤기에 이 책에 우주와 삶의 비전이 담겼다고 했을까.

선조는 의서 편찬을 명하면서 세 가지를 당부했다. 기존의 의서들이 잡다하니 제대로 분류하고, 단순히 질병과 처방을 다룰 게 아니라 섭생과 수양을 우선으로 하며 우리 땅에서 나는 약재들을 적극 활용하라는 것이다. 이에 허준은 내경, 외형, 잡병, 탕액, 침구 등 다섯 가지 큰 묶음에 이 모든 것을 담았다.

책을 열면 한 사람이 앉아 있는 측면도가 보인다. 그것도 사지는 없고 몸통뿐이다. 서양의 전신 해부도에 익숙하다보니 영 어색한데 깊은 뜻이 있었다. 생명의 핵심은 얼굴과 오장육부에 있으니 굳이 사지를 그릴 필요가 없는 거다. 유형의 생리와 무형의 정신이 결합된, 살아 숨쉬는 인간을 표현한 그림이 동양의 해부도다.

여는 글도 예사롭지 않다. 손진인이 이르기를, 머리가 둥근 건 하늘을 본뜬 것이고 발이 넓적한 건 땅을 본따서다. 하늘에 사계절이 있듯이 팔다리가 있고, 오행과 육극이 있듯이 오장육부가 있다. 이런 식으로 천지와 신체 사이를 잇는 화려한 대칭의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예전 같으면 웃었을 거다. 대체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을 거다. 그런데 별의 구성물질이 우리와 같다고 하지 않던가. 의사이기 이전에 학자였던 허준은 천문학과 물리학, 불교와 인류학 등의 지식을 섭렵했고 그 결과물로 〈동의보감〉을 썼다. 그러니 고전문학 전공자인 고미숙이 아낌없는 찬사를 보낼 밖에.

내가 우주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일단 자기 자신을 잘 알고 돌봐야 한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타인을 살피겠는가. 사회적으로, 전 지구적으로, 생명의 역사라는 우주적 차원으로 인과의 그물망을 넓게 칠 수 있는 힘이 성숙이라면 그렇게 되기 위한 시작은 마땅히 서로를 염려하고 같이 아파하는 마음이어야 하리라.

환자를 돌보다 지쳐서 의자에서 쪽잠을 자는 간호사 사진을 봤다. 질병관리본부의 책임자는 떡진 머리로 카메라 앞에 서고 있다. 짠하다. 모두가 짠하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고 아파하는 이 마음으로 힘든 시기를 잘 견뎌낼 거다. 허준이 말한 삶의 비전은 나와 너, 우리가 나란히 걷는 삶일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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