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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로 위의 사람들
반월신문 | 승인 2020.03.04 17:58

본질적으로 통로란 멈추어 있을 수 없는 곳이다. 다음 목적지를 위해 거치는 길, 사람 사이의 소통의 길이기에 영원히 도착지가 될 수 없다. 그러기에 통로 위에서의 삶은 분주하며 불안할 수밖에 없다. 영화의 메시지를 ‘인 디 아일’(통로라는 뜻, 감독 토머스 스터버)보다 더 정확하게 대변할 수 있는 제목을 찾긴 힘들다.

독일의 한 창고형 대형마트의 통로 위에 서 있는 세 사람은 불안하다. 근무 시간이면 푸른 제복 속에 가난과 과거를 숨길 수 있는 크리스티안은 구부정한 자세만큼이나 삶이 불안하다. 몸에 문신을 새긴 것을 고객에게 들키지 말아야 할 뿐 아니라, 소년범이었던 과거로부터도 숨어야 한다. 가난도 그를 불안하게 하는 요소다. 뭐가 가장 힘드냐는 부르노의 질문에 “배가 고파요.”라고 대답하는 크리스티안의 모습이 내내 아른거린다.

마트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윤택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마리온은 속이 곪아 있다. 남편에게 맞고 사는 것을 숨기기 위해 마리온은 모든 사람들을 향해 환하게 웃는다. 근무가 서툰 크리스티안에게 커피를 사달라고 부탁하거나 말이 없냐고 묻거나 문신이 멋있다고 칭찬하지만 딱 거기까지 한다. 폭력적인 남편 때문에 다가오는 크리스티안을 좋아하면서도 냉랭하게 굴기도 한다.

부르노는 끝까지 혼자 자기 삶의 짐을 지고 간 인물이다. 마트에서 생활할 때는 만인의 멘토처럼 친절하고 따뜻하고 마음 깊었던 부르노의 실체는 그의 자살로 드러난다. 부인과 농장에서 오순도순 살 거라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다. 오랜 세월 함께 한 마트 직원들의 허탈함만 덩그러니 남았다. 독일이 통일이 된 후 동독 향수에 젖는 사람(오스탈기, Ostalgia)들이 많았다던데, 부르노가 전형적인 인물이다. 농장에서 부인과 함께 일을 하며 닭과 개를 기르고 살고 있다는 부르노의 거짓말은, 동독 시절에 멈춘 그만의 시간이다. “길을 달리던 때가 그리워.”라는 말 속에 동독 시절의 삶에 대한 그리움이 짙게 배어 있다.

불안한 생활 속에서 그들이 기댈 것은 서로에 대한 따뜻한 관심이다. 지게차 면허를 따는 크리스티안을 다 같이 응원해 주고, 크리스티안이 마리온을 좋아하는 것을 눈치 챈 동료들이 비난하기보다는 상처 주지 말라고 따뜻하게 귀띔해 준다. 사랑이 피어나는 장소는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안정되지 않은 통로 위에서라도 서로를 생각해 주며 곁에 서 있을 수 있다면 위로받을 수 있다.

꿈을 꾸는 것도 고단한 현실을 벗어날 기제로 작용한다. 지게차를 끝까지 뻗었다가 접을 때 들리는 파도소리는 현실을 잠깐 잊게 해 주는 청량제 구실을 한다. 현실에선 가 닿을 수 없는 바다를 지게차에서 들리는 파도소리를 통해 손에 잡는다. 크리스티안이 마리온과 커피 마시며 듣는 파도소리도 마찬가지다. 현실적으로 서로는 하나가 될 수 없지만 동경하면서 치유 받을 거라는 암시로는 충분하다. 둘은 아마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파도소리와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영화는 친절한 편은 아니다. 촘촘하지 않게, 툭 던지듯 말을 하기에 공백을 상상력으로 채워야 하는 부분도 있다. 빈 자리를 메타포가 채운다. 통로라는 거대한 메타포 위에 수족관이라든가, 지게차, 바다 퍼즐, 야자수 있는 바다 그림을 통해 감독의 나머지 의도를 알아채야 한다. 게다가 시간이 흘렀다는 걸 암시하기 위해 끼워 넣은 황량한 겨울 들판이 던져주는 분위기마저도 훌륭한 메타포다. 영화를 시로 봐도 무방한 지점이다.

시를 읽는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탁하고 복잡한 수족관 안의 물고기를 가리키며 부르노가 크리스티안에게 “팔릴 때까지 여기서 헤엄쳐.”라고 한 말은, 통로 위의 삶이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곳에서 노동을 하는 마트 안 직원들의 삶을 그대로 닮아 있다. 달리 탈출할 길이 없어 견뎌야 하기에 크리스티안과 마리온은 브루노처럼 파도소리를 불러내는 건 아닐까. 영화가 끝나도 질문은 끝나지 않는다. 내내 들리는 파도소리, 크리스티안과 마리온의 행복을 빌며 불안을 잠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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