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 세상에서 살다간 부부가 있다. 서정적인 자연을 배경으로 선명한 색채로 사랑을 그려나간 두 사람. 영화의 원제 ‘Maudie’를 우리나라에서 ‘내 사랑’(에이슬링 월시 감독)으로 바꿔 개봉한 이유에 고개를 끄덕인다. 탁월한 선택이다. 언뜻 보면 모드 루이스의 그림 세계를 다룬 것 같지만, 그 안에는 그녀가 사랑한 자연, 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그득하다.

영화는 캐나다의 실존 화가 모드 루이스(1903~1970)의 일대기를 따라간다. 어려서부터 류머티즘성 관절염으로 고생하는 그녀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오빠와 숙모는 핑퐁 게임하듯 그녀를 서로 떠넘기려고 한다. 그들에게 모드는 ‘가문의 수치인 아이, 자기 몸도 못 돌보는 천덕꾸러기’일 뿐이다.

절뚝이는 건 가족의 시선이지, 모드는 아니다.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는지 그녀는, 남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아는 자존감 높은 사람이다. 즐겁게 춤을 추러 다니고, 길에서 만난 사람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사랑스럽고 빛이 난다. 자연을 보는 눈은 초롱초롱하다. 걸음걸이가 좀 특이해서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몰라서 그러는 것이라고 인정한다. 애들이 자기에게 돌을 던져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도 남편 에버렛의 폭력이나 숙모와 오빠의 부당한 대우에는 당당히 맞선다. 소리 지르고, 화도 내면서 말이다.

활짝 열려 있는 모드와 달리 에버렛은 꽁꽁 닫혀 있다. 에버렛은 ‘내 집, 내 의자, 내 물건’에 집착한다. 그 마음에 사람을 앉힐 여유가 없기에 모드가 헤집고 들어오는 것이 못마땅해 “내 인생에 기어들어 오지 말라.”고 선언하기도 한다. 모드는 굴하지 않는다. 용기가 필요한 시점에는 에버렛을 향해 “사람들은 당신을 싫어하지만 난 당신을 좋아해요.”, “당신은 내가 필요해요.”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모드 덕분에 어두운 내면을 가진 에버렛은 서툴게나마 사랑을 표현할 줄 알게 된다.

둘이 부부로 살아가는 모습은 여느 부부와 똑같다. 관절염을 앓는다 해서, 타인과 교류를 잘 못한다 해서 결혼 생활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사랑과 질투, 싸움과 위기, 그리고 화해의 파도를 타며 서로에게 익숙해진다. 그림 그리고 있는 모드를 위해 집안일을 하면서 생색을 냈을 테다. 텔레비전에 아내만 착하게 비쳐지는 게 질투가 났을 수도 있다. 모드 딸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데려가 주는 손길에는 화해의 마음이 담긴다. 그게 사랑이다. 가난하다고 두 사람이 늘어나고 구멍 난 낡은 양말 한 켤레의 여정을 한 게 아니었다. 하얀 면 양발 한 짝과 감청색 양말 한 짝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맞춰가며 ‘내 사랑’을 찾아냈다. 모드가 세상을 바라보듯, 두 사람의 사랑을 들여다본다. 긴 세월 서로에게 녹아들었던 그들의 사랑, “난 사랑 받았다.”고 말하며 떠나는 모드의 목소리가 오래 남는다.

모드의 그림은 순수하고 명확하다. 그림에 꾸밈이 없고, 색에 또 다른 색을 섞어 쓰지 않았다. 새, 사슴, 눈 쌓인 들판, 고양이, 나무, 강물, 튤립, 부부 등을 단번에 알아보게 그린다. 어쩌면 잡화점 사장의 말처럼 아이의 그림처럼도 보인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이 열광한다. 살아생전 인정받지 못하던 고흐와 달리, 그녀의 그림은 닉슨 부통령(후에 대통령)에게도 팔려나간다. 그 힘은 무엇일까. 붓 하나만 있으면 좋다는 그녀, 그리고 싶으면 그린다는 그녀, 움직일 수 없으니 기억에서 꺼내와 그린다는 그녀. 욕심 없이 그려냈기에 그림은 편안하게 다가올 테고, 행복하게 그렸기에 그림을 통해 그 마음이 전달되는 것일 게다. 세상과 생명을 향한 그녀의 사랑스러운 시선이 그림에 배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인생 전부를 액자 속에 남겨 놓고 간 그녀가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이유이겠다.

차가운 시선을 동화로 바꾼 건 두 사람의 힘이다. 특히 모드의 힘이다. 요즘 뒤숭숭해서 그런지 순수의 시절로 돌아가 위로받고 싶다. 모드의 그림 한 점이면 그 시절로 풍덩 뛰어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이 살다간 작은 집이 그녀의 그림과 함께 캐나다 땅 어딘가에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언젠가 그 땅을 밟아보길 바란다면 욕심이 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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