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내 짐작이 틀릴 수도 있지만... 내 생각을 너에게 알려주는 건 너의 안정이나 이익에도 안 좋고 내 인간성과 정직성 또는 분별력에도 좋지 않은 일이야. 하지만 너를 사랑하니까 솔직히 말할게. 아직 증거를 말할 단계는 아닌데 너의 남편을 잘 관찰해 봐.”

《오셀로》(셰익스피어 글, 민음사)에 등장하는 이야고의 말을 지금 쓰는 말로 바꾸면 이렇다. 이야고는 이 말로 자신이 시기하던 오셀로의 삶을 단숨에 지옥으로 떨어뜨린다. 비록 시대는 변했지만 여전히 이 말은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에서 강력한 파괴력을 발휘하는 중이다.

만약 지인이 이런 말을 한다면 내 삶은 온전할까. 그 말을 듣고도 흔들리지 않을 만큼 남편을 향한 내 믿음은 단단한가.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허망하게 무너지지는 않겠지만 일단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머리를 싸맬 것 같다. 그동안의 삶은 예전과 다를 수밖에 없을 테고.

이번에는 그 대상을 남편에서 단짝 친구나 지인, 직장 동료 등으로 넓혀 봤다. 누군가 자신의 목적을 이루거나 내가 맺고 있는 관계를 시샘해서 다가온다면 과연 그 사람의 정체를 단박에 알아볼까? 모르겠다가 내 답이다.

왜냐하면 사람을 걸러서 사귈 줄 모른다. 그 사람 마음이 내 마음이려니 생각하곤 무조건 믿는 편이다. 아무리 평판이 나쁘더라도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선입견 없이 다가서려고 한다. 그러니 가끔 된통 당하는 일이 생길 밖에.

어떻게 하든 진짜와 가짜를 가려내서 나 자신과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는 필요를 느낀다. 더 이상 오셀로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다행히 저자가 이끄는 대로 찬찬히 따라가니 답을 알겠다.

이야고는 오셀로에게 당신를 사랑해서,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서 솔직히 사실을 전달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야고의 말은 거짓이다. 사랑은 상대방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기본이다. 곁에 있거나 떠나거나 그 이유는 서로의 행복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설령 데스데모나가 불륜을 저질렀다고 해도 이야고는 모른 척해야 된다. 어차피 두 사람의 사랑이 식어서 벌어진 일이라면 그가 밝히지 않아도 언젠가는 알려질 일이다. 게다가 당사자가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할 리가 있나.

나라면 정확한 증거도 없는 일을 굳이 말하는 이유는 뭐냐고 묻겠다. 나를 진짜 생각한다면 잠자코 있다가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져서 힘들어할 때 곁에 있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겠다.

고전이 계속 읽히는 이유는 그 이야기가 현재와 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가운데 자주 상연되는 희곡이기도 하다. 신뢰와 명예, 가부장적인 상황과 인종 문제, 실재와 겉모습 사이의 간극 등을 폭넓게 다뤄서 그런 가 보다.

계산을 하면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싫지만 그렇다고 호구가 되는 것도 싫다. 진짜는 나의 안정과 이익에 반하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오셀로의 충고를 기억하겠다. 행복의 조건에 많은 이름이 필요한 건 아닐 게다. 이미 걸러진 진짜와 잘사는 게 이 봄의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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