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아 해넘이와 해돋이를 보기 위해 여수를 찾았다. 향일암에 올라 해넘이,오동도에서 해돋이를 했다. 그리고 트래킹 코스로 인기가 많다는 금오도행 배를 탔다. 여수시는 섬 전체에 5개의 코스를 만들어 놓아서 걷기에 참 좋았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생겼다. 여수로 돌아오는 배편을 예약하던 중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겨 마지막 배를 놓친 거다. 남아 있는 배라고는 이름도 생소한 백야도행 뿐. 백야도는 최근에 다리가 생겨 버스나 택시를 타고 여수로 갈 수 있다는 말에 일단 배에 올랐다.

세상의 일은 나쁜 일이 생기면 좋은 일도 생긴다고 하지 않던가. 선장님의 집이 여수라 퇴근하는 길에 우리를 목적지에 내려준다고 하셨단다. 그렇게 만난 선장님은 71세의 어르신. 우리는 거의 한 시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크고 작은 섬들에 다리가 생겨 자칫 일자리가 없어질 걱정도 들지 않느냐고 여쭈었더니 지금껏 열심히 살아왔고, 세상의 순리에 맞춰 따라가는 것도 필요하다며 다음 여행 때 도움이 될 팁을 한껏 안기시더라.

집으로 돌아와 그 분의 나이와 일과 기꺼이 차에 태워준 마음을 생각했다. 그리고 꺼낸 책《남아 있는 나날》(가즈오 이시구로 글, 송은경 옮김, 민음사). 각각 평생을 선장의 일과 집사의 일로 보낸 두 남자의 삶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은 까닭이다.

스티븐스는 영국의 저명한 저택, 달링턴 홀의 집사다. 그는 그곳을 인수한 새 주인의 호의로 6일간의 여행을 떠난다. 목적지는 젊은 날 사랑했으나 일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켄턴 양이 사는 곳.

그는 집사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집사로서 품위를 유지하기 위해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사랑을 지키지 못한 것은 물론 흠잡을 데 없는 하녀 둘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해고될 때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 여행은 아픈 깨달음이다. 최선을 다해 모셨던, 존경하던 주인 달링턴 경은 나치 지지자였다.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에 달링턴 홀은 패전국 독일에 대한 동정을 이끌어 내려는 공간으로 이용되고, 스티븐스의 나무랄 데 없는 집사 정신과 역할은 고스란히 비난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무리 그가 “오늘날 나리의 삶과 업적이 안쓰러운 헛수고쯤으로 여겨진다 해도 내 탓이라고는 할 수 없다. 나에게도 응분의 가책이나 수치를 느끼라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다.”라고 해도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걸어가는 길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해야 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스티븐스가 말한 집사의 정신이나 역할, 품위는 입는 것이지만 인간으로서의 사고와 행위는 본연적인 것임으로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쉽다는 김남주 번역가의 해설에 고개를 끄덕인다.

인간은 누구나 자기 역할이 있다. 그리고 그 역할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연민과 배려, 사랑이 깃들지 못한 역할은 칭찬을 받지 못함은 물론 품위까지 가기는 어렵다. 이제는 내려 놓을 길을 생각하며 매일매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는 선장님의 말씀에서 나의 한 해를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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