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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장작불을 타고~
반월신문 | 승인 2019.12.27 15:54

새벽녘, 뒤척이는 소리에 거니챘지만 난 귀잠 든 모양새로 그냥 누워 있는다. 행여라도 내가 깰까 싶어 밖으로 나가는 남편의 몸짓이 조심스럽다. 술래에게 들키기 싫어 발뒤꿈치 들고 숨는 아이 모습이다. 오늘도 남편은 식구들이 일어나기 전에 방안을 데울 심신이다.

원래 남편은 잠 하나는 끝내 주게 잘 자는 사람이다. 베개에 머리가 닿으면 5분 이내로 온 방 가득 요란하게 비음을 채운다. 일단 잠들었다 하면 깨우기 전까진 그 어떤 소음에도 끄떡없이 침대를 지킨다. 낯선 곳에 몸을 뉘여도 그 태도엔 변함이 없어, 가히 시공을 초월한 편한 잠자기 습관이라 하겠다. 자리가 바뀌면 바람결에 서걱이는 낙엽소리에도 뒤척이는 나로선 한없이 부러운 잠버릇이다.

얼마 전부터 남편의 잠자기 습관이 180도 바뀌었다. 조금만 돌려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난방비를 줄일 겸 설치한 벽난로에 장작을 지필 때부터 남편의 잠자기 패턴이 확 바뀐 것이다. “불, 불, 불!” 마치 이 땅에 불만 피우라는 명령을 받고 온 사람처럼 요즘 남편은 온통 장작불을 살리는 데 열심이다. 조왕신이 노여워할까 싶어 정성껏 불씨를 지켜내던 옛 여인네의 태도로, 남편은 불 살피기에 여념이 없다. 행여 회식 자리라도 생길 양이면 집에 들러 불 확인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고주망태가 되어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가도 벌떡 일어나 불을 피우고 단잠에 빠져드는 남편이다. 귀찮을 법도 한데 한 번도 불 피우기를 거른 적이 없다. 이쯤 되면 불 피우기는 남편에겐 사명감을 넘어 하나의 경건한 의식 같아 보인다.

남편이 워낙 불 피우기를 좋아하긴 한다. 도시에서 살던 남편이 나와 결혼해 친정집에 처음 갔을 때, 아궁이 앞을 떠나지 못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오래된 기억 속에서, 풋풋한 총각 같은 아저씨는 쇠죽이 다 끓었는데도, 천진난만하게 계속 아궁이에 장작을 넣어 결국은 방을 절절 끓게 만들었다. 사위 민망하지 않게 하려고, 따뜻해서 좋다던 부모님이 당시 땀 꽤나 흘리셨다. 그런데도 새로 집을 지어 아궁이가 사라질 때까지 남편의 과도한 불 때기는 그칠 줄 몰랐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자던 잠 쫓아내가며 장작을 얹을 정도면, 단순히 불 때기를 좋아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남편 식의 사랑 표현이라 착각하련다. “사랑한다고 말해 봐.” 그러면 “어떻게 그걸 말로 하냐? 다 알면서 뭘 그래.” 하며 손사래 치는 남편 나름의 감정 표현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집 공기가 싸늘하면 마치 자기가 잘못한 것 같다고 하지만, 그 마음에 배려와 사랑이 깊게 깔려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내가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밥상을 차려내는 마음과도 같을 게다. 나이 들면서 변화구보다는 직구가 편해지긴 했지만, 이런 돌려 말하기는 여전히 가슴을 따스하게 적신다.

불 앞에서 따뜻해하는 가족을 보고 환하게 웃는 남편은 세상을 다 가진 듯이 보인다. 대형 프로젝트를 따내도 저리 뿌듯해할까 싶을 정도로 그 웃음엔 기쁨이 가득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난로 앞으로 가 잠에서 서서히 깨어나는 작은아이나, 머리 감고 차가워진 몸을 난로 앞 열기에 맡기는 큰아이를 쳐다보는 그의 눈길엔 사랑이 가득하다. “집이 따뜻해서 참 좋다.”는 내 한마디면 개선장군이라도 된 양 남편의 어깨는 불쑥 솟아오른다.

우리 집 온도는 한겨울에도 항상 높음이다. 가족을 위해 해 주는 작은 일 하나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남편이 피워낸 장작불 덕분이다. 해마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있지만, 장작불 온기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생활하는 우리 가족들의 웃음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타닥타닥 타 들어가는 장작은 가만가만 가족을 한데로 모아 준다. 사랑은 장작불을 타고 흘러넘친다. 사춘기 딸의 예민함도, 과제에 치여 사는 큰아이의 피곤도 벽난로 안으로 다 타 들어간다.

오늘도 남편은 살며시 깨어나 장작을 얹고서야 편하게 코를 골며 나머지 잠을 청한다. 그제야 난 몸에 남아 있는 잠을 툭툭 털어내며 남들보다 좀 이르게 하루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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