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다. 친구가 올린 글에 댓글을 달기 위해서 시작했는데 어느덧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느끼는 하나가 됐다. 물건을 들이면 설명서를 보면서도 버벅거리는 사람인데 대체 이 용기가 어디서 나왔을까.

나는 소문난 기계치다. 신혼 초 지방으로 출장을 간 남편은 중요한 축구경기의 녹화를 부탁했다. 그는 90분 동안 리모컨을 잡고 씨름하다 결국 나가떨어졌다는 고백을 듣곤 바로 기대치의 많은 부분을 덜어내더라.

그런데 모른다고, 못한다고 시치미 뚝 떼고 살기엔 불편한 게 많았다. 수능시험을 앞두고 더운 여름을 보내는 조카에게 휴대폰으로 아이스크림도 보내고 싶고, 전시회를 연 지인에게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선물하고픈 마음도 생기니.

다행히 기계치의 삶을 구원해 줄 도움의 손길들이 많아 여기까지 왔다. 간혹 기껏 올린 사진이 날아가기도 하고 순식간에 정보가 사라져서 열받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

《허세라서 소년이다》(김남훈 글, 우리학교)는 오롯이 소년인 소년과 어쩌다 어른이 된 나 같은 사람이 꼭 읽어야 되는 책이다. 프로레슬러인 그가 의자를 들고 선 프로필 사진을 보면 언뜻 허세인 것처럼 보이지만 책을 읽고 나면 진정한 어른인 그를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 거다.

‘허세’란 실속이 없이 겉으로만 드러나 보이는 기세. 저자는 좋지 않은 의미로 쓰이는 이 말을 자연스럽다고 본다. 자신이 원하는 상태를 이미 이룬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니 일종의 ‘가상 체험’ 같은 거라나.

허세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중2병’인데 호르몬 분비가 급격히 증가하는 사춘기 때 종잡을 수 없고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자의식에 자신이란 실체를 매달고 허둥대 보아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제대로 알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춘기 소년에게 적극 권장한다고 했다. 그렇게 즐기다 보면 ‘이건 진짜 내가 아닌데.’하는 순간이 찾아오고, 꾸미지 않은 온전한 자신이 있는 지점으로 찾아갈 수 있는 용기도 그때 나온다고. 하긴 허세라는 껍데기를 벗어 버린 모습도 나쁘지 않다, 부족한 부분을 채워 보자라는 생각이 그냥 들 리가 있나.

그는 유명한 프로레슬러였다. 그러던 어느 날 로프 반동을 하다가 링 밖으로 떨어져 하반신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사람의 자존감이 무너지는 결정적인 계기는 스스로 최소한의 위생과 청결을 책임지지 못하는 그 순간에 온다고 했다. 그는 ‘작은 승리’의 반복으로 자존감을 회복하고 진정한 사람으로 거듭난다.

나는 맘껏 허세를 부린, 소년이었던 그의 자기 고백에 끌렸다. 어영부영하다 맞은 어쩌다 어른. 허세가 없었으니 참된 내 얼굴을 들여다볼 여지도 없었던 것 같다. 뒤늦게 인생 선배인 그가 건네는 소년의 연애, 소년의 부모, 소년의 공부 등을 열심히 읽었다. 진정성이 느껴지는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내 마음이 움직인 셈이다.

나는 진짜 어른인가. 나이를 먹어도 세상의 이치는 여전히 모르겠다. 다만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어떤 부분을 채워야 하는지는 알겠다. 타인에게 도움을 주기 보다는 받은 일이 많은 나, 언젠가는 되돌려줄 날이 있을 거란 기대로 즐겁게 배운다. 사람아, 세상아, 정말 고맙다.

저작권자 © 반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