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말은 옛말만은 아니렷다. 올해 안으로 출판되기만 하면 되겠지 하며 여유를 부렸는데, 막상 인쇄가 들어가니, 이제나저제나 책이 나올 날만 기다린다. 최종 OK를 한 다음부터 기다림으로 목이 한 뼘은 길어진 듯하다.

수필집을 엮는다. 그동안 <반월신문>에 연재되었던 수필을 중심으로 52편을 모아 『금요일 오후잖아요』(푸른향기)라는 제목으로 묶어 세상에 내보낸다. 내게 이런 날이 올 줄은 생각도 못했는데, 어쩌다 보니 내 이름자 석 자 박은 책을 갖게 된다. <반월신문>이 수필집의 일등공신이다. 일주일에 한 편씩 수필을 써야 하는 강제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참으로 고맙다. ‘감 익는 마당’이라는 수필 한 편을 읽고 선뜻 지면을 허락해 준 최제영 사장님과 꾸준히 수필을 읽어 주신 독자님들께도 감사한 마음 가득이다.

일주일에 수필 한 편을 써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글감이 여유가 있을 때는 그나마 괜찮았다. 마음 안에 뭔가 고여야 물을 퍼내는데, 자주 바가지를 드니, 글감이 가난해져 갔다. 원고 마감이 코앞에 닥쳐 겨우 글감이 생각나는 경우가 많아 밤을 새기 일쑤였다. 호흡이 긴 글이라, 마음을 건드리고 가는 일이 없으면 글을 쓰기 힘들었다. 똑같이 공을 들이지만 글을 완성하고 나면 들쑥날쑥 보여 아쉽기도 했다. 마감을 하고 나면 일주일은 또 어찌나 빨리 오는지, 하루이틀 지나면 금세 압박감에 시달렸다.

힘들지만 신문에 글을 싣는 일은 즐거웠다. 수필을 연재하며 많은 분들에게 격려를 받았다. 관심 가져주신 익명의 독자분들의 반응을 전해들을 때마다 힘을 얻었다. 지인들로부터 연락도 많이 받았다. 신문을 읽다 우연히 글을 발견하고 인증샷을 찍어 보내는 반응에 기분이 좋았다. 글을 쓰는 과정을 외롭지 않게 지켜 주신 분들 덕분에 제법 수필이 모였다. 혼자였으면 짧은 시간에 50여 편이 넘는 수필을 써낼 수 없었다. 어울려 함께 해온 시간들의 결과물을 갖는 감회가 새롭다.

모인 글이 있어도 책을 내는 일은 새로운 과정이다. 수많은 고민과 선택을 하며 주의를 기울이다 보니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써놓은 글을 다 출판할 수 없어 골라 모아 다듬는 데 시간이 걸리고, 순서를 정해 출판사에 글을 넘기고, 교정 보고, 디자인 정하는 일에는 에너지가 많이 필요했다. 최대한 오자를 줄이기 위해 같은 글을 여러 번 반복해 읽고, 책 내용과 어울리는 표지를 만들기 위해 고민을 많이 했다. 에너지가 고갈되어 쉽게 가면 좋겠다 싶다가도, 책이 세상에 나오면 손쓰고 싶어도 못할 것이기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맘에 드는 표지 그림을 얻기 위해 졸업작품전시회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진 큰애에게 부탁할 타이밍도 잘 찾아야 했다. 마음 졸이는 순간을 지나, ‘이만하면 됐다. 이렇게 했는데도 잘못된 게 나오면 할 수 없지.’ 하며 모든 과정을 끝내고 손을 털었다.

인쇄를 넘기고 나니, 복병이 나타난다. 몰입의 순간을 지나니, 연극배우가 공연이 끝나고 나면 갖는다는 허탈감이 온다. 걱정도 스멀스멀 기어온다. 괜히 책을 내는 거 아닌가 싶다가, 기대도 되다가 기분이 오락가락한다. 체한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다가 궁금증에 목이 타기도 한다. 하긴 글을 출산하는 일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겠지.

원래 예상보다 책이 늦게 출판될 모양이다. 대여섯 날만 지나면 될 줄 알았는데 열흘 이상 걸린단다. 11월말에 파주물류센터에 화재가 나 책 50만권이 불에 탄 일이 내 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출판사마다 재인쇄를 들어가는 안타까운 일임에도 내 책 인쇄가 밀리는 일에 조바심이 인다. 적어도 이번 주말에는 나온다고 하는데, 그때까지 종종걸음 꽤나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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