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글자중독이라 책이 없는 삶을 상상하기 힘들다. 특히 수필은 어려운 시기를 함께 건너 더 애틋하다.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 가장 큰 고민은 성적이나 친구 관계가 아니라 우리집 경제 사정이었다. 큰딸이라는 이름의 무게와 친구를 집으로 데려올 수 없는 환경, 원하는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하는 아쉬움은 나를 마음대로 휘둘렀다.

그런 고민을 나만 끌어안고 있는 것 같아서 혼자 아팠을 때 수필이 왔다. 시는 좋은데 어려웠고, 소설은 재미있는데 남의 얘기. 수필엔 글을 쓴 그 사람이 진짜 들어 있어서 반갑게 만났던 거다.

그들이 무슨 말을 건넸던가. 결론은 딱 한 마디,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나만 단칸방에 산 게 아니었다. 나만 하루하루가 버거운 것도 아니었다. 그들도 그랬고 그럼에도 열심히 살았다. 포기하지 않으면, 가족과 친구가 곁에 있으면 어쨌든 버틸 수 있다고, 그래야 한다고 그들은 글로 나를 안아줬다.

참 많은 수필집을 읽었다. 그러는 사이에 그들의 반짝이는 얼굴과 아름다운 글들이 내 안에 쌓였으리라. 그래서 수필을 일상생활 속에서 얻은 생각과 느낌을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쓴 글이라고 가볍게 여기는 것을 보면 화가 난다.

해마다 신문사가 주관하는 신춘문예에 수필 부문이 없는 것도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는 생각 때문이라는데... 쉬운 문학 장르가 있던가. 문학성이 떨어진다는 기준은 도대체 뭘 말하는지.

심명옥 작가가 〈금요일 오후잖아요〉(푸른향기)라는 수필집 펴내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봤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을 미리 읽어보는 행운도 누렸다. 그리곤 내린 결론은 수필을 죽을 때까지 사랑할 것이라는 것.

그가 펼친 마당엔 사람과 자연이 사는데 둘은 서로의 자리를 욕심내지 않는다. 그저 태어나서 자라는 서로의 삶을 축복할 뿐이다. 그들이 그렇게 어울려 빛을 내다가 죽음에 이르는 길은 그지없이 아름답다.

저자는 일상의 삶을 어떻게 담아야 하나 끊임없이 고민한다. 경험을 무작정 주워 담는 게 아니라 절제된 감정과 시적인 언어를 잘 섞어 풀어 놓는다. 그래서 그의 글은 시처럼 읽힌다.

“청력이 끝까지 살아있다는 말을 믿고, 조용히 어머니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아 드렸다. 나머지 한쪽은 내 귀에 꽂았다. 그리곤 산울림의 노래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를 같이 들었다. 애달픈 시간은 그렇게 흘렀고, 두고두고 기억할 거라는 내 고백을 어머니가 잘 안고 가셨으리라 믿는다.”

수필은 그 안에 담긴 말과 마음이 안아주기 위해 쓴 글이라 원래 따뜻하다. 그도 “한 줄이라도 사람에게 온전히 안길 문장을 담은 수필집 한 권을 내는 꿈”을 이 책에 담았다. 나를 평생 지켜줄 보약 한 첩 지어 먹는 마음으로 인터넷 서점을 찾는다.

수필은 힘이 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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