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청소년 열정공간 99도씨’가 주관한 ‘청소년이 행복한 세상을 위한 집담회2’가 열렸다. 청소년이 행복하려면 청소년과 비 청소년이 어떤 변화를 이끌어야 할지 생각을 모으는 자리였다. 무엇보다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행복을 찾기 위한 권리를 이야기 했다는 자체가 의미 있었다. 필자가 사회를 본 ‘청소년 시민과 사회 참여’ 분과에서 참신한 제안이 있어서 소개한다.

제안한 내용은 청소년이 용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국가가 용돈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다양했다. 공부를 하다보면 배가 고픈데 용돈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교통비가 너무 비싸서 다니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한다. 친구들과 이런 저런 활동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못한다고 한다. 노인수당도 있고 보육수당도 있고 청년수당도 있는데 왜 청소년수당은 없냐는 것이다. 다들 소득이 없거나 소득이 있기 어려운 사람들한테 국가가 수당을 주는데 왜 청소년에게는 없냐는 것이다. 이유 있고 매우 타당한 문제제기였다. 존엄한 삶을 위한 경제적 기본조건을 제안한 것이다. 훌륭한 상상력이다.

누군가 이야기했다. 사람이 발명한 최고의 발명품은 돈이라고. 분명한 것은 돈은 사람을 위해서 나타난 것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사회 안에서의 관계와 활동을 의미한다. 여기서 자유로운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관계를 맺고 활동을 하려면 기본조건이 있다. 바로 사람이며 구성원임을 증명하는 존재 확인이다. 이 증명에 꼭 필요한 것이 돈이다. 조금 품위 있게 표현하면 경제적 소득이다. 돈이 있어야 가능해진다. 경제적 빈곤과 배제는 반드시 사회적 배제로 귀결된다. 관계가 끊어지고 활동이 중지 된 사람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게 되어있다. 고립은 그 자체로 사람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이다.

구성체 안에 존재를 부정당하는 구성원이 없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기본적인 존재이유이며 활동방향이다. 그래서 국가의 모든 정책은 구성원들의 존재가 증명되도록 뒷밭침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구성원들이 다른 사람과 같이 자신이 동등한 자격으로 사회를 구성하고 있음을 발견케 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사회를 ‘인간의 존재 증명을 위해 새롭게 변화한다는 가능성에서 사회를 상상적공동체라고 불러야 한다’ (김현경, 사람,장소,환대)

우리 사회는 체면을 중시 여긴다. 그래서 쿨한 것이 좋은 것이며 울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권리의 문제는 그렇지 않다. 절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인간 존엄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 존엄보다 상위 개념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존엄은 꼭 외쳐야 한다. 외쳐야 들린다. 들려야 반응한다. 역사의 증명이다.

참신한 제안 덕분에 사회가 상상적 공동체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사람은 사람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을 때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 수 있다. 그러려면 기본생활권이 확보되어야 한다. 기본 생활권은 국민발의권, 주민자치권, 기본소득, 기본자산(주거권), 교육문화의료복지권등이 그것이다.

‘청소년 기본용돈’은 그중 아주 작은 하나이다. 청소년을 사회구성원으로서 인정하는 맘씨 좋은 사회적 정책이다. 용돈을 주시던 어른들을 기다리던 어릴 때의 기억이 난다. 용돈을 주시던 어른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어른들이 어른으로 보였다. 맘씨 좋은 아줌마 아저씨가 기다려지고 반가웠다. 좋은 모임에 가서 청소년들에게 많이 배웠다. 내가 맘씨 좋은 어른이어야 함을 자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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