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김장을 했는데 마침 그 전날이 친정엄마의 생신이었다. 서울에 사는 막내 동생이 바쁜 언니들을 대신해서 갈비찜과 잡채, 샐러드를 만들어 왔다. 오는 길에 사왔다는 아귀찜과 케이크까지 얹어 우리는 새벽 1시까지 거나한 잔치를 벌였다.

이튿날 네 자매와 그 식구들이 복작복작 움직였더니 절임배추 150포기가 김치가 되더라. 보쌈용 삼겹살을 한 솥 삶아 썰어놓곤 달착지근한 겉절이와 노란 배춧속에 곁들여 연이은 판을 벌였다. 해마다 늘 하는 말, 이제 김장은 그만하자. 그러면서도 또 와글와글 모여 김장판을 벌일 거라는 걸 안다.

〈우리 음식의 언어〉(한성우,어크로스)는 이렇게 우리가 먹고 마시는 모든 것이 말로 표현되고 있으니 그와 관련된 말을 하나하나 되새겨보자는 목적으로 국어학자가 차려낸 밥상 인문학이다. 단순히 음식을 소개하는 데 머무는 게 아니라 말의 변화, 다양한 삶의 모습까지 담은 게 특징.

토마토는 원래 과일이었다. 미국 대법원이 채소 농가를 보호하기 위해 요리에 사용한다는 근거로 채소라고 규정한 다음부터 과일이 아닌 채소가 된 거다. 밥과 함께 먹으면 채소, 밥을 먹고 나서 또는 밥때와 관계없이 먹으면 과일인데 경제적인 논리에 의해 운명이 바뀌기도 한다.

저자는 우리 삶의 원천이자 음식의 출발인 밥에서 출발하여 숙맥(콩과 보리)의 신분 상승을 논한 다음 타지에서 건너 온 빵과 면의 역사를 훑는다. 아울러 밥의 옆자리를 얌전히 차지하고 앉은 국이나 찌개 등도 놓치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숟가락까지 나아간다.

사실 젓가락은 동아시아에서 특이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숟가락은 국, 찌개는 물론 물에 만 밥이나 김칫국물까지 떠먹어야 하기 때문에 밥상에서 빠지면 섭섭하다. 이 숟가락은 사람의 신분을 가늠하는 잣대가 되기도 했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을 담담히 담고 ‘수저’의 어원을 밝혀 풀이한 다음 ‘밥숟가락을 놓다’로 찾을 수 있는 죽음까지 우리를 이끈다.

‘먹고 사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보니 음식과 관련된 말에는 그 삶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나는 이 책을 들고 우리네 사는 모습을 다양한 반찬, 술과 주전부리, 과일과 양념 등으로 나눠 들여다보며 푸근한 재미를 느꼈다.

음식도 하나의 역사다. 그 시대를 알기 위해서는 음식을 알아야 하고, 지금 우리의 삶도 음식으로 살필 수 있다. ‘먹방’과 ‘혼밥’이 등장한 현실을 곰곰이 들여다보자. 그 다음에는 어떤 먹을거리가 나올지 궁금하지 않은가.

김치만 먹고 살 것도 아닌데 김치냉장고가 두둑해졌다는 이유 하나로 행복하다. 홍시가 되라고 베란다에 내놓은 대봉도 슬쩍 만져본다. 먹는 즐거움 없이 사는 나를 상상할 수 없다. 나는 밥때를 놓치면 화가 나고, 사람 사이의 관계는 함께 잠을 자고 밥을 먹어야 빨리 정이 든다고 믿는 먹보 영주다. 뭣이 중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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