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아니 나는 외로움을 잘 느끼는 성격이다. 어쩌면 나는 사람 사이에 느끼는 거리감이 싫어 정성을 쏟는 게 아닌가 싶다. 사람을 내 안에 들이며 채워지는 충만한 기쁨 덕분에 생기를 얻고, 그 생기로 일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마음에 누군가를 두고서야 홀로 당당히 잘 걷는다. 그래서인지 함부로 사람을 마음에 들이지 않고, 들인 이상 쉽게 덜어내지 못한다.

중학교 친구들을 만났다. 작년 말부터 가끔 넷이 만나고 있는데, 그 중 한 친구는 내 생애에 있어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한참 각이 예민한 시절, 내 온 마음을 차지했던 친구로, 훗날 그게 사랑이었을까 되짚어보게 만들기도 한 사람이다.

예나 지금이나 참 깔끔한 그녀. 왜 끌림이 시작되었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같은 반에 있어도 그리 시선을 두지 않았던 그녀가 어느 날부터 자꾸 눈에 뜨였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교복이며 환한 미소가 일품인 그녀를 훔쳐보면 괜히 기분이 좋았다. 끌림이란 만남의 횟수와는 전혀 무관한 것이어서 시나브로 좋아지는 그녀를 바라보며 속앓이가 시작됐다. 운동장 저편에서 시작된 어둠이 둘이 앉은 발목 끝을 채울 때까지 나누던 친구와의 대화가 어느 사이 그녀의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그 땐 단짝은 딱 한 사람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단짝끼리는 쉬는 시간에 이야기 나누는 것은 물론 화장실 가는 길까지 동행하며 마음을 하나로 만들어 갔다. 그 사이에 하나가 끼면 이상하게 어색해지곤 했다. 셋이 어울리는 방법을 잘 몰랐다. 그녀가 눈에 들어올 때 이미 내겐 단짝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자꾸 눈에 들어와 내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나를 좋아하던 친구의 상처를 외면하면서 그녀를 마음에 들이는 일이 조심스러웠다. 나쁜 아이가 된 듯해 명쾌할 수 없었다.

고민 끝에 용기를 냈지만 쉽지는 않았다. 더딘 그녀의 발걸음은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고민으로 일기장은 꽉 채워졌다. 주고받은 편지는 설렘의 연속이었지만 끝내 우리 사이는 더 이상 당길 수 없었다. 단짝이 이미 있었던 그녀가 일정한 거리 이상은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는지 고등학교 진학과 함께 열병은 서서히 잠재워졌다. 시내로 진학한 그녀와는 달리 시골 고등학교에 남은 나는 물리적인 거리를 핑계로 원래의 단짝에게 마음을 붙였다. 그렇게 폭풍 같던 시간이 지났지만 그녀의 단발머리 위로 반짝이며 쏟아지던 햇살과 아카시아 향기는 또렷하게 기억한다.

결국은 돌아서 그녀를 다시 만났다. 30여년을 훌쩍 뛰어넘어 중학교 시절 만났던 친구들이 만나고 살자며 연락해 왔다. 오랜만에 만나도 그녀의 미소는 여전히 환하다. 세월을 그렇게 건너왔어도 보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드는 미소는 여전하다. 깔끔한 외모도 그대로고. 쳐다보고 있으면 예전 기억이 올라오는데 아프지는 않다. 그 때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속내를 꺼내놓고 아쉬움을 털어낸다. 옆에 있던 친구들도 그 때 서로들 얽히고설켰던 친구 관계를 들춰내며 함께 추억에 잠긴다. 하나같이 왜 둘을 고집했던가 반문하며 까르르 웃는다.

모처럼 실컷 웃었다. 이젠 둘이 아니어도 좋다. 셋이어도 넷이어도 상관없다. 한 시절 스친 공감으로 즐거운 추억을 쌓아가자며 의기투합하는 친구들에게 기꺼이 내 마음을 얹는다. 그간에 어떻게 살아왔는지 잘 몰라도 우리는 10대의 추억으로 단숨에 하나로 묶인다.

서로 챙겨주기 바쁜 친구들 속에서는 외로움을 느낄 겨를이 없다. 친구 넷으로 난 부자가 된 듯하다. 생각만 해도 방시레 떠오르는 미소, 정성을 쏟고 싶은 사람을 저축하는 일은 언제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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