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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허 없이 잘 사는 삶
반월신문 | 승인 2019.11.15 11:31

〈결혼면허〉(조두진 글, 예담). 기혼녀에게 왜 이 책이 눈에 들어왔을까. 그냥 돌아보고 싶었다. 내가 지금 어디쯤 서있는지, 앞으로 남은 긴 시간을 이미 선택한 남자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해 보고 싶었다.

인선은 배경도 좋고 학벌도 좋다. 단지 직장을 다니지 않는 게 문제지만 그건 입맛에 맞는 곳이 없을 뿐이다. 결혼생활학교를 다니면서 면허를 따면 사랑하는 남자친구와 ‘검소하지만 격이 있고, 낡았지만 깨끗하고, 어둡지만 따뜻한 거실의 소파’ 같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꿈꾼다.

그런데 교장은 사람을 사랑해서, 사람 좋은 거 하나 믿고 결혼하면 이혼할 확률이 높다고 딴지를 건다. 결혼은 농사와 같아 처음부터 바로 옆에 도랑물이 흐르는 밭을 구해야 고생할 일이 적고,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니라 이심이체이므로 각자의 영역을 알려고 하지 말고 너무 가까워지려고 하지 말라고 쐐기를 박는다.

슬쩍 반박하고 싶던 마음이 30년을 함께 산 아내를 살해한 60대 남자의 고백을 듣는 순간 사라진다. “내 아내는 나쁜 여자가 아니었고, 나 역시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우리는 둘 다 야박하게 평가해도 평범한 사람은 되었을 것이다. 그런 우리를 나쁜 사람으로 만든 것은 부부라는 관계였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보면 더없이 좋을 사람들이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서로를 죽일 듯 미워하며 생채기를 내는 일이 얼마나 많던가. 나 역시 마누라 앞에서 방귀 뀌는 자유쯤은 누려야 한다는 듯 사정없이 가스를 방출하고 냉장고를 들여다보곤 잔소리를 할까 말까 고뇌의 표정으로 입을 달싹거리는 중년의 아저씨를 얼마나 흘겨봤던지.

사실 그쯤은 전체적인 그림으로 봤을 때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작은 흠집에 불과한데도 고개를 흔들었으니 저자의 말처럼 결혼 후 내 사랑이 쉰내를 풍기는 뜨거운 여름날의 두부가 된 격이다.

인선은 결혼생활학교 과정을 마칠 무렵 결혼을 찾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일을 찾는다. 결혼에 매달리지 않게 되니 남자친구의 여자 상사와 후배가 편안한 존재가 되고 스스로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일상에서 행복을 즐기게 된다.

나와 그녀의 공통점은 여기에 있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남편바라기’에서 벗어나 있다. 그랬더니 밖에 나가면 평범한 남자 축에 드는 내 남자의 사소한 문제를 편안히 보아줄 여유가 생긴다.

뜨거운 여름날 금방 쉬는 두부를 매일 만들 필요가 뭐 있겠나. 먹고 싶은 날 한 끼 먹을 분량만 만들어서 맛있게 먹으면 된다. 그래야 아쉽고, 아쉬워야 또 찾게 되지 않을까. 내가 남편에게, 남편은 내게 그런 두부가 되면 면허는 필요 없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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