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 달째 시달리고 있다. 초선지에서 스치듯 만난 뒤로 궁금증이 돌기 돋듯 올라온다. 살풀이 공연의 무대 장식으로 깔려 있던 나무 조각상들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들은 이후로 내내 마음이 간다. “살아서 받지 못하던 대우를 죽어서 꼭두를 통해 딱 한번 받을 수 있었대요.”

우스꽝스럽게 보였던 것들에 의미가 부여되니, 마음이 급해졌다. 심 봉사가 눈을 떠 처음 걷는 것처럼 허겁지겁 찾았지만, 소장자는 이미 꼭두를 챙겨 넣은 후였다. 눈앞에서 보고 만지며 자세히 들여다볼 좋은 기회를 놓쳐 버리고 나서 본격적인 꼭두앓이가 시작되었다. 망자를 산 사람처럼 위로하며 보냈던 옛사람들의 따뜻함에 마음이 물큰해질수록 알고 싶은 마음은 점점 커갔다.

꼭두는 망자가 이승을 떠나 삼도천을 건너 저승으로 갈 때까지 동행하던 나무 조각상이다. 인물상, 혹은 동물과 식물 형상 등 여러 가지 모습의 꼭두는, 망자를 달래 주면서 동시에 산 자에게는 위로를 주는 존재이다. 상여에 매단 봉황이나 용, 연꽃, 두루미 등의 조각상에 망자가 다음 생에 복을 맘껏 받으라는 발원이 가득하다.

인물 조각상에는 산 사람에게 하듯 역할에 따라 각각의 임무를 부여했다. 안내꼭두는 망자의 길을 안내하고, 호위꼭두는 주위의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 시중꼭두는 망자가 불편하지 않게 허드렛일을 하고, 광대꼭두는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거나 거꾸로 서서 망자의 두려움을 걷어내 준다.

꼭두를 통해 옛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세계관을 만난다. 옛사람들은 죽음을 끝이 아닌,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로 생각했다. 하여, 살아생전 고달팠을수록 그 삶을 더 정성껏 토닥였다. 정성을 다해 배웅하며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좀 더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으리. 나 또한 죽음 이후의 삶을 끝이라 여기고 막연하게 가졌던 불안감을 아버지의 49재를 올리면서 털어냈다.

흙이나 바람이 되든, 또 다른 삶으로 태어나든 한번쯤 다른 생을 생각해 보며 가슴이 편안해졌던 경험을 잊을 수 없다. 망자에게 예를 다하며 함께했던 시간들에 따뜻한 햇살을 얹는 모습은 경건하기까지 하다. 세상에 온 것만큼이나 스러져 가는 생명도 허투루 안 보는 삶의 자세는 아름답다.

이상하게도 지배층의 상여에는 인물상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살아생전 아쉬움이 없어서일까. 민초들은 여러 종류의 꼭두를 매단 상여에 망자를 옮겼다던데, 이는 그만큼 이생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는 소리겠지.

잘살고 싶은 소망이 누구에겐들 없으리. 다시 태어나면 굳은 살 배긴 손으로 살기보다는 좀 더 편안하게 살기를 바라며 꼭두에 소망을 단단히 매달았을 것이다. 나라에서도 상여에만큼은 용이나 봉황을 쓰는 것을 막지 않았다니, 죽어서야 비로소 평등한 대우를 받았던 삶이 짠하다. 이승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저승으로 훠이훠이 잘 날아갔을까.

여행 중 우연히 만난 ‘꼭두전’은 인상적이다. 산 사람을 대하듯 망자를 중심으로 도열한 꼭두를 직접 보니, 막연히 가졌던 감정은 훨씬 깊어진다. 학교 도서관에 틀어박혀 민속학 책을 뒤적이던 젊은 시절이 있었다. 지금의 관심은 어쩌면 민속학에 끌렸던 그 시절로 향해 있는 건 아닐까. 오래 전에 예열해 놓은 관심을 이제야 본격적으로 꺼내보는 느낌이다.

세월에 따라 문화는 바뀐다. 장례문화가 간소해지면서 꼭두도 점차 사라져 갔다고 한다.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도 내가 꼭두를 만날 수 없었던 건 당연하다. 더구나 충청도나 경상도, 전라도에서 특히 발달했다고 하니, 강원도에서 태어난 나는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끌린다. 지금까지 몰입해 들어간 시간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처음 꼭두를 만난 초선지에서의 떨림 때문일까. 한용운의 날카로운 첫 키스의 기억만큼이나 가슴을 단번에 훑고 지나간 꼭두를 난 한동안 놓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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