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제목을 놓고 한참 생각했다. 그림책을 읽곤 ‘우리 연애할까’라니. 그런데 《알사탕》 (백희나 글, 그림. 책읽는곰)을 읽은 느낌은 정말 그랬다. 다만 그 대상이 남자가 아니었을 뿐, 난 정말 이 세상과 연애를 하고 싶다.

혼자 노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아이가 있다. 사실은 친구와 같이 놀고 싶지만 친구가 없으니 새 구슬을 사러 문구점에 들른다. “그건 알사탕이야. 아주 달지.” 크기도 모양도 색깔도 가지가지인 사탕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첫 번째 사탕을 먹었다. 박하 향에 귀가 뻥 뚫리더니 소파가 하는 말이 들린다. 동동아. 리모컨이 옆구리에 껴.. 너무 결려 아파.. 너희 아빠 보고 방귀 좀 그만.. 숨 쉬기가 너무 힘들어..

정말 이상한 사탕이다. 동동이는 두 번째 사탕을 먹곤 함께 산 지 8년이나 된 구슬이와 이야기를 나눈다. 너무 늙어서 자꾸 눕고 싶다는 구슬이. 동동이는 이리저리 끌고 다녀서 미안하다는 사과를 하고 목줄을 풀어준 뒤 오후 내내 함께 논다.

여기까지 읽고도 마음은 이미 나긋나긋 풀어진다. 저자가 괜히 2005년 볼로냐 아동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됐을 리가 없다. 알사탕을 먹고 세상의 소리를 듣기 시작한 동동이의 재미있는 표정은 글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동동이는 그렇게 알사탕을 먹곤 아침부터 밤까지 잔소리만 늘어놓는 아버지의 속마음을 안다.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잔소리를 한 마디로 줄이면 결국 ‘사랑해’ 세 글자. 우린 그 마음으로 자식을 키우지 않던가.

풍선껌을 불곤 돌아가신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은 동동이는 밖으로 나간다. ‘안녕’이라고 말을 건네는 나무. 빨갛고 노랗게 물이 든 나무들을 마주 보고 선 동동이의 모습은 그 어떤 유명 화가가 그린 그림보다 따뜻하다. 나도 잠깐 멈춰 서서 그 아름다운 빛을 흠뻑 마신다.

저자는 떨어진 낙엽이 이듬해 피어날 새싹의 양분이 되듯 지나간 추억을 거름 삼아 동동이는 한 해 한 해 성장해 나갈 거라고 했다. 아이들에게는 그럴 만한 시간과 에너지가 충분하다고 믿는 이유에서다. 그런 마음으로 책을 만들었으니 책장을 넘기는 손에 온기가 듬뿍 묻어나는 건 당연한 일 아닐까.

책은 듣기만 하던 동동이가 친구에게 말을 건네는 것으로 끝난다. 세상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아이의 상처받은 마음은 조금씩 나았던 거다. 우리가 매일 바라보는 사물 혹은 동물, 세상 모두에겐 그런 기적이 있다.

그렇다고 동동이처럼 알사탕 한 봉지를 사들곤 세상의 이야기가 들리길 기다리기엔 나이를 너무 먹었다. 하지만 내가 내 곁의 이름들을 얼마나 자주, 얼마나 열심히 부르고 찾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이른 실망을 하고 싶지는 않다.

연애가 뭐 별건가. 그 대상을 생각만 해도 좋고 사는 게 축복이라고 느끼면 그 마음에 사랑이 깃든다고 믿는다. 얼마 전 꽃집에서 들인 초설은 무슨 말을 하려나. 캘리 연습을 한다고 잡는 나무젓가락은 나를 어디로 이끌려나 궁금하다.

빼꼼히 얼굴을 내미는 나를 못생겼다고 내치진 않겠지. 그들을 겁나게 사랑하겠다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이 가을은 참 좋은 계절이다. 그림책 한 권이 불러일으킨 말랑말랑한 연애의 감정,

우리 연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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