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부부 등으로 표현되는 아주 작은 공동체에 불려지는 언어이기도 한 이 말이 어떻게 보면 남편과 아내로 쉽게 표현되는 걸 간혹 본다. 젊어서는 둘이 사랑해 만나 결혼식을 통해 백년가약을 맺고 살지만 살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다 보면 백년가약을 지키기란 쉽지가 않다.

누가 먼저고 누가 나중을 떠나 자라나는 아이와 모시고 살아가는 부모님과 변해가는 주변 여러 사항들이 백년을 가기에는 어찌 보면 좀 무리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가정이 이렇다 할 문제가 있든 없든 잘 살아가기도 하지만 급변하는 요즘엔 좀 어려움이 많은 것 같아 보인다.

많은 배움을 통해서 또는 종교, 철학들을 통해서 아무 문제 없이 승화시키기도 하지만 이것도 저것도 아닌 문제로 갈등으로 이겨내기 힘든 부부들을 보곤 한다. 가정에 구성원들이 많을 때는 둥글고 모나지 않게 사는 법을 절로 배우는 것 같기도 한데 구성원이 적어지면서 한 사람의 판단이 전체의 상황을 결정하는 요즘은 쉽게 양보하는 사람의 자리는 서서히 없어지고 마는 것 같다.

특히 엄마로서의 자리는 그런 자리가 참 많아 보인다. 아이들 뒷바라지, 남편의 내조 이런 생활로 반평생을 넘게 살다 보면 그 자리는 표도 나지 않고 갑자기 자신의 정체감에 나는 누구인가? 라는 스스로의 질문 앞에 힘들어하는 아내들도 많이 보는 것 같다.

어떤 모임에 잉꼬 노부부의 이야기를 듣고 그렇구나 생각이 절로 드는 건 “아내는 사랑 안 해서 아내, 남편은 남처럼 살아서 남편”이라는 말이 쉰을 넘어서는 부부들의 적당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부부가 적극적으로 사랑하며 잘 사는 부부도 있지만 정으로 산다는 부부도 많은 것 같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산다는 것이 표현이야 쉽지만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졸혼을 얘기하는 부부도 간혹 본다. 졸혼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의아한 생각도 들지만 황혼에 각자에게 편한 대로 결혼은 유지하면서 사는 거라는데 참 이해하기 힘든 말 같아 필자도 한참을 생각하게 했다.

서로가 살아가면서 너무 맞지 않아 갈라서기 일보 직전까지 갔던 어느 부부의 후회의 말이 생각난다. 참고 참고 너무 참다 도저히 참지 못하고 내 뱉은 말 “그만 갈라서자”고 이 삼십 년을 참고 살아온 말을 하는 순간 마음은 뻥 뚫리고 좋은데 진짜 그러고 살기에는 지내온 삶의 돌부리 같은 흔적이 오히려 가슴에 지우기에는 불안하고 차라리 그런 돌부리 같은 자리라도 있는 게 났겠더라고 정으로 사는 거에 의미를 부여하는 어느 부부의 얘기가 차라리 더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산다는 건, 여자로서가 아니라 아내로서, 남자로서가 아니라 남편으로서 산다는 걸 알기까지가 참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남들은 다 그래도 나는 않 그런 거 같은데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사는 사람도 많은 거 같다.

그런 게 뭐 중요하냐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서로의 생각이 존중 되어지지 못하는 시기에 이르면, 정말 서로를 이해하기조차 힘들어지는 시기가 되면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살아가게 되나 보다. 좀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좀 더 이해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드는 시기가 되면 이미 때는 늦은 부부들을 많이 본다.

사랑하기만도 시간이 부족하고 더 잘해주고 싶어도 이미 남은 시간이 없을 때 옆에 있는 사람, 곁에 있는 사람이 제일 소중한 사람이란 걸 알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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