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베트남으로 둘만의 여행을 떠나기 전에 두 가지 계획을 세웠다. 무조건 쉰다 그리고 책을 읽는다. 온 식구가 다 아는 책벌레지만 정작 휴가를 가서는 책을 읽는 여유를 갖지 못한 터라 기대지수가 백점이었다. 알고 보니 딸도 틈틈이 책을 즐기고 있었지 뭔가. 그 엄마에 그 딸이라니.

현지에서 읽을 책을 고르는 마음이 여느 때보다 신중하다.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아야 한다는 조건에 든 책은 《마의 산》(토마스 만, 열린책들). 20세기 초반의 독일 문학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저자의 대표작이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작품이라는 데 마음이 쏠린다.

카페나 해변, 수영장 등에서 틈나는 대로 편다. 처음 접하는 교양소설인데 낯선 장르임에도 어렵지 않게 읽힌다. 교양소설은 독일에서 발생하고 발달한 장르. 18세기와 19세기에 독일은 시민계급이 사회에 참여하거나 정치에 참여할 기회가 제한되어 있었다. 이들에게서 생성된 무력감이 교양소설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정치 및 사회 인식이 대전환점을 맞이한 시기에 작가로서 자신의 정신적 삶의 궤적을 기록했다. 폐렴 증세로 요양원에서 치료 중이던 아내를 문병하러 간 저자의 실제 체험과 쇼펜하우어, 니체, 바그너에게서 받은 영향이 잘 섞여 차분히 가라앉는 나를 기쁘게 바라볼 수 있다.

책은 엔지니어를 꿈꾸는 평범한 젊은이가 스위스에 있는 요양원으로 사촌을 문병하러 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3주 예정인 여행이었지만 본인도 요양이 필요하다는 진단에 의해 아예 7년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23세의 청년에게 일상에서 벗어난, 희망하던 일과 멀어진 7년이란 어떤 의미일까. 자신을 괴롭히는 질병과 싸우면서 죽음을 쉽게 접해야 되는 그곳은 정말 마의 산일까. 기약 없는 시간에 자신을 내맡긴 사람들은 무슨 생각과 힘으로 살아갈까.

“우리는 공간을 우리의 감각 기관으로 인식하지. 시각과 촉각으로 말이야. 그러면 시간을 인식하는 기관은 무엇이야? (중략) 우리는 시간이 흘러간다고 말하지. 하지만 시간을 잴 수 있으려면 시간이 균등하게 흘러가야 해. 시간이 균등하게 흘러간다고 어디에 쓰여 있단 말이야? (중략) 우리의 시간 단위는 단지 약속에 불과한 거야.”

책을 읽는 장소가 낯선 곳이고 늘 하던 일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상태라 그랬는지 유난히 이 문장이 마음에 와 닿았다. 똑같은 시간을 상황에 따라 길고 짧게 느꼈던 수많은 경험이 쌓인 때문이리라. 시간이라는 개념은 인간의 편의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하지 않던가. 앞으로의 시간 쓰임에 농도가 깊어질 것 같다.

해석의 관점에 따라 교양소설, 시대소설, 시간소설, 성년입문소설 등으로 구분 짓는다는데 읽은 후 가져갈 게 많다는 말로 들린다. 저자는 마의 산에 머문다고 해서 사람들의 삶이 질병에 담보 잡힌 건 아니란다. 그가 풀어놓는 사랑, 죽음, 논쟁 등 여러 실타래는 아름답고 뜨겁고 빛난다. 그래서 뜨개질하듯 천천히 읽다보면 짜임새가 촘촘하거나 느슨하게 만들어진 자신만의 작품을 가지게 된다.

재미있냐고 묻는 딸의 말에 쉼 없이 오르고 내려오다 지쳐 떨어지는 책이 아니라 둘레길 걷듯 음미하는 책이라고 대답했다. 휴가지에서의 첫 책, 딸과 나란히 앉아 읽은 책이 이 책이라 더없이 반갑고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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