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을 넘기고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진도가 잘 나가다가 점점 중구난방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단순하게 동양과 서양으로 구분 짓고 시대별로 대표적인 학자들의 작품들을 읽다보니 철학과 윤리학, 정치학 등이 마구 섞여버린 탓이다.

주제별로 정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시점에 만난 책이 「국가란 무엇인가」(유시민 글, 돌베개)다. 국가의 역사를 한눈에 훑을 수 있고 한때 정치인이었던 그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그의 이력은 화려하다. 그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다녔지만 거리와 감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 등의 책을 썼고, 노무현 정권 때 보건복지부 장관을 맡기도 했다. 2009년 ‘용산 참사’를 계기로 국가의 역할을 고민하면서 이 글을 썼고,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계기로 2017년에 개정신판을 냈다.

이 책은 크게 9장으로 나뉜다. 1장은 토마스 홉스나 마키아벨리로 대표되는 국가주의 국가론을 다룬다. 국가는 사회 내부의 무질서 및 외부 침략에서 인민의 생명과 안전 등을 보호하기 위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정당하게 행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어서 국가 권력은 국민의 평화와 안전, 공공의 복지 이외의 다른 목적을 위해 사용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 존 로크와 애덤 스미스의 자유주의 국가론을 소개한다. 3장은 국가는 지배계급이 계급투쟁을 수행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 칼 마르크스의 진보주의 국가론을, 4장에서는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를 주제로 아리스토텔레스와 맹자의 목적론적 국가론을 다뤘다. 여기까지 읽으면 국가에 대한 기본적인 배경지식은 충분히 익힐 수 있다.

저자의 고민은 5장부터 드러난다. 애국심은 과연 고귀한 감정일까. 만약에 그렇다면 톨스토이는 왜 애국심이 인위적이고 비이성적이며 유해한 감정이라고 확신했을까. 독재체제의 국가폭력은 반대하기 쉬우나 민주주의 사회의 국가폭력은 왜 반대하기 어려울까. 우리나라의 진보정치는 역사 발전의 합법칙성에 따라 사회의 변화나 발전을 추구할 수 있을까.

그의 주장은 간단하다. 정의를 외면하는 국가, 선량한 시민 하나라도 버리는 국가는 결코 훌륭한 국가라고 할 수 없단다. 왜냐하면 주어진 기회를 살리는 것은 개인의 몫이지만 어떤 기회를 얻을 수 있는지는 일차적으로 국가의 상황에 좌우된다는 게 그 이유다.

훌륭한 국가 없이는 국민들의 훌륭한 삶도 있을 수 없으니 우리 스스로 훌륭한 국가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는 그의 말에 공감한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는 국가, 국민을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존중하는 국가가 저자만의 꿈은 아니리라.

민주주의 이후에 어떤 정치 체제가 나올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안다. 나처럼 국가에 대해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므로 국가는 더 이상 국민을 우습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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