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쩍 인사동으로 방향을 튼다. 경복궁을 둘러본 여운을 닦아내기엔 인사동 거리가 안성맞춤이다. 궁궐을 더듬는 동안 흠뻑 빠져든 감성을 찬찬히 닦아 현재로 되돌리기에 그곳만한 곳이 또 있을까. 좀 더 깊이 박제된 시간 속으로 들어가기에도 좋겠고.

인사동에 들어서니 한산하다. 비 온 뒤 무덥고 습한 기운이 깔려서인지 오가는 사람들이 드물다. 덕분에 궁궐에서 가져온 기분을 올올이 풀어놓으며 거리를 걷는다. 박물관이나 궁궐을 다녀오면 오래 전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언젠가 사라질 우리들에 대한 아쉬움이 교차되어 묘한 느낌이 들곤 하는데, 이번에도 여지없다. 붉은 오미자차 한 잔에 씻어내려 해도 쉽지 않다.

휘적휘적 다시 걷다 발길을 멈춘다. 공기 중에 남아 있는 물기를 단숨에 빨아들이려는 듯 넓은 유리창 안 그림들의 색채가 환하다. 이끌리듯 문을 밀고 들어가 그림을 들여다본다. 무채색 담론을 펼쳐내던 궁궐 안 세계와 달리 노랑, 초록, 보라 등 다채로운 색깔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문명숙의 개인전이다. 화폭마다 꽃과 자연을 배경으로 있는 여자, 혹은 여자들에 넋이 나간다. 천경자의 꽃과 여인 그림 시리즈와는 또 다른 분위기다. 천 화가의 여인들이 깊고 어두운 느낌을 지녔다면 문 화가의 여인들은 밝고 화려하고 경쾌하다. 시나브로 우울감이 씻겨 나가고 궁금함과 재미가 올라온다.

그림으로 바짝 다가선다. 꽃을 배경으로 목을 길게 뺀 여자가 정면을 응시하는 그림 두 점이 눈에 들어온다. 당당하고 밝게 보이는데 어떤 이미지를 전달하고 싶었을까 궁금해 슬쩍 제목을 커닝한다. ‘숨은 봄을 가지려고’와 ‘구름으로 살고 싶었을 때’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제목에 기대 그림을 읽으니 이야기가 훨씬 풍부해진다. 등을 보이고 있는 여자의 어깨 위에 고양이가 있는 그림에는 ‘인간이 꼭 되어야겠니’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제목을 보는 순간 그림의 주는 여인이 아닌, 고양이로 바로 넘어간다.

갸웃거리던 고개는 재치 있는 제목으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고양이 이야기를 떠올리고는 크게 끄덕인다. 글이나 그림이나 예술품이 세상으로 던져지면 읽어내는 사람들의 몫이겠지만, 만들어낸 사람의 의도를 눈치 채면 훨씬 즐거움이 크다.

예전부터 무제라 붙은 시들이나, 그림을 접하면 불편했다. 뭔가 더 알고 싶고,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을 거절당한 느낌이었다. 자유롭게 해석하라는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감상하는 입장에선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오죽하면 작가도 몰라서 무제라는 제목을 붙이는 거라고 툴툴거렸을까.

서로 다름에서 출발하더라도 같음을 찾아내며 공감하고 위안 받는 데 있어 제목은 좋은 길잡이다. 난해한 그림이나 글일수록 제목은 등대처럼 더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을 밝혀 주는 최소한의 장치다. 목정 방의걸의 ‘매미소리’라는 작품도 제목 덕분에 숲만 그려진 그림 앞에서 소리가 들렸다. 제목이 아니었다면 숲 속을 거니는 상상만 했을지 모른다. 문명숙의 그림도 제목을 통해 여러 층위를 읽어내는 게 훨씬 수월하다.

가끔 사람 사이에서도 제목을 서로 말해 주면 어떨까 싶다.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려 주면 사람 사이에서 헤맬 일이 줄어들 것 같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잦다 보니, 그림에 붙은 제목처럼 각자 추구하는 가치를 문장화해서 기억해 두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을 찾으려면 끊임없이 자기를 살펴야 한다. 거짓말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든지, 따뜻한 관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든지 자기를 나타내는 제목 정도를 알고 있고, 알려 줄 수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 가는 길이 좀 쉽지 않을까. 다채로운 경험을 쌓으며 좋은 관계로 나아가기가 훨씬 쉬울 수도 있을 테고.

한참 그림에 빠져 있는 동안 일행을 놓쳤다. 좋은 그림 앞에서 생각이 자꾸 꼬리를 문다. 적어도 나란 사람을 대표하는 제목을 찾아야겠다며 전시관 문을 밀고 나와 거리에 선다. 습습한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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