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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근준 자유총연맹 안산시지회 동분회협의회장 “죽을 고비 세번이 내게 준 숙제…베푸는 삶으로 헌신할터”
최제영 기자 | 승인 2019.07.24 00:22

2번의 뇌출혈에 우상지 마비로 삶과 죽음 넘나들어
사업에서 나오는 이익금 3% 적립…장애인·다문화 가족에 전달

자유총연맹 활동…소외계층 콩나물 나눔·세월호때 안심귀가 보람
선부중 백혈병 학생 살려…얼마전 장가가고 자식 낳으니 ‘흐믓’

양근준씨는 첫 인상부터 부드럽고 겸손했다. 자유총연맹 안산시지회 동분회 협의회장과 별망종합상사를 운영하는 그는 장애인이었다. 하지만 몸은 불편할 뿐 정신은 누구보다 밝고 정이 넘쳐보였다. 양근준씨가 인터뷰를 마치고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양근준씨는 첫 인상부터 부드럽고 겸손했다. 자유총연맹 안산시지회 동분회협의회장과 별망종합상사를 운영하는 그는 장애인이었다. 하지만 몸이 좀 불편할 뿐 정신은 밝고 정이 넘쳐보였다. 강원도 원주가 고향인 양 회장은 직업군인 아버지 밑에서 반듯한 청년기를 맞았지만,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대학을 중퇴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사업에서 나오는 이익금 3%를 적립해 어려운 이웃에 기부하고 있고 특히 콩나물 봉사가 큰 보람이라고 했다. 백혈병 학생을 살린 일화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때 안심귀가 서비스는 지금까지 기억에 남을 정도로 의미가 컸다. 세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참뜻은 남에게 봉사하라는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상지가 마비됐지만 평범한 일상처럼 능숙하게 행동한다고 한바탕 웃음을 보였다. 그를 만나 세상사는 얘기를 들어봤다.

Q몸이 불편해 보인다.

-1991년 부터 오른쪽 팔은 거의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의학적으로 ‘우상지 마비’라고 하는데 크고작은 병원을 백방으로 찾아 치료를 시도했지만 결국 이 상태로 남아있다. 장애 2급 판정을 받았는데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일상이 되어버렸다. 사람을 만날때 마다 악수를 하게되는데 왼손으로 잡을 수 밖에 없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늘 왼손으로 악수하고 있다. 하루 이틀이 아니어서 큰 어려움은 없다.

Q여러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마디로 제2의 보너스 인생을 살고 있다고 보면 된다. 지금까지 세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두번이나 뇌출혈로 쓰러져 간신히 살아났다. 지금의 인생은 서비스라 생각하고 봉사하는데 전념을 하고있다. ‘하늘이 준 생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운명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살고있다. 사람이 좋고 누구나 만나면 그냥 행복하다.

Q몸이 불편한데 사업은 잘 되고 있나.

-2008년 8월에 청소용품 납품업체를 차렸다. 이리저리 영업을 하러 다녀야 하는 사업이다. 어찌보면 사업이라 할 정도도 아니다. 내가 혼자 운영하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심히 뛰어다니고 주변에서 도와준 덕분에 오늘까지 큰 무리없이 꾸려가고 있다. 2018년에는 장애인기업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장애인 벤처기업’이라고 보면 된다. 사업 하기 전에는 삼성전자 영업부에서도 일을 했다. 나중에는 스카이라이프 본부장으로 8년간을 근무하기도 했다. 모든게 경험와 노력의 결실이라고 생각한다.

양근준 자유총연맹 안산시지회 동분회 협의회장이 동주민센터를 방문해 콩나물을 전달하고 있다. 사랑의 콩나물은 노인정 등에 전달된다.

Q기부는 어떤 방법으로 하고 있나.

-2011년부터 이익금의 3%를 적립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현금을 저금통에 넣어 장애인 단체와 다문화 행사때 기부하고 있다. 다문화 자녀들에게 귀마개 150개를 전달한 적도 있는데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더라. 콩나물 공장에서 그날 팔고 남은 것을 각동 노인정에 배달하는 봉사도 큰 보람이다. 콩나물 사장께 감사하다. 장애인의 날 체육대회때도 생활정착 자금으로 약간씩 기부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탈북민에 대한 봉사도 이어가고 있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어려움은 없다. 아직은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다. 돈을 많이 벌면 더 큰 기부를 할수 있을텐데 아직은 부끄러울 정도다.

Q강원도 출신으로 알고 있다.

-(재)안산강원도민회 부회장을 8년이나 했다. 아주 오래한 편이다. 강원도민회관 건립 추진위원장을 맡은 적이 있는데 다행히 지난 2018년에 초지동에 80평 규모의 도민회관을 마련하는 성과를 얻었다. 원주에서 1986년에 이사와 강원도 출신들과 우의를 다진 결과물이다. 그런 탓에 도민회관은 오랜 꿈을 얻은 듯 흥분될 정도로 기뻤다.

Q백혈병 학생의 생명을 구했다는데.

-1995년으로 기억되는데 내가 선부1동 통장으로 있을때의 일이다. 당시 선부중학교 1학년에 다니던 한 학생이 백혈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치료비가 없어 애를 태운다는 예기를 듣고 이 학생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곰곰히 생각한 끝에 방송을 내보내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내 SBS 사장에게 애절한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얼마뒤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는데 결국 ‘김승규가 간다’라는 프로에 백혈병 학생에 대한 방송이 나갔다. 그 결과 1억3000만원이라는 거액이 모금돼 무사히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Q의미가 커보인다.

-그렇다. 그 당시 선부중학교는 물론이고 공무원들까지 적극 나서 치료비를 모금할수 있었다. 사랑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그때 실감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가슴 뭉클함을 잊을 수가 없다. 특히 13단지 영구 임대아파트에서 178만 원이라는 거액을 모금했는데 눈물이 저절로 나올 정도였다. 얼마전 들은 얘기로는 그 학생이 장성해 얼마전 결혼을 했고 자식을 나았다는 소식도 들었다. 앞으로도 건강하게 잘 살길 바란다.

자유총연맹 안산시지회 회원들이 세월호 참사때 귀가차량을 돕는 안심귀가 서비스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Q세월호 참사때 봉사도 궁금하다.

-가슴아픈 기억으로 남는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교통정리에 온힘을 쏟았다. 안전을 외면한 참사여서 더욱더 교통정리에 정열을 바쳤다. 또한 진도에서 안산을 오가는 유가족과 시민들의 안심귀가 서비스도 5개월 정도 했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남을 도와야 한다는 신념이 몸에 배어있는 탓이다. 10원을 벌면 1원을 기부하라는 부모님의 당부를 잊지 않고 살고 있다. 자유총연맹 안산시지회 원곡동 분회장을 맡고 있으면서 25개 동분회협의회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이 앞선다.

Q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은.

-안산에 59년 돼지띠 모임인 안돈모(안산돼지모임)를 통해 이석기 자유총연맹 안산시지회 사무국장을 만났다. 정이 많은 친구다. 현재 50~60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는데  동감내기 친구들을 만나면 마음이 편안하다. 3대 회장을 역임했는데 앞으로도 이들과의 우정은 계속될 것이다. 아내와 1남1녀를 두고 있는데 나의 봉사에 적극 도와주고 있다. 참으로 고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봉사를 위해 카니발에서 스타렉스로 차량을 바꿨다. 차가 비좁아 불편함이 많았기 때문이다. 직업군인 출신이었던 아버지가 석탄공사 납품을 위해 큰 돈을 주고 벌목했던 나무가 장마에 휩쓸려 엄청난 손해를 입었다. 그런탓에 경희대를 중퇴하고 말았다. 그러나 다시 일어났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봉사의 길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최제영 기자  cjy1010@ians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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