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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현 변호사의 세상사는 法] 훈육과 학대의 경계
반월신문 | 승인 2019.07.23 17:22
서정현 변호사

2013년경 여름경 경북 칠곡군에서 발생했던 아동학대 사건이 얼마 전 영화화 됐다. 계모가 두 아이를 지속적으로 학대해오다가 둘째 딸이 죽자, 12살 언니가 범인으로 지목되어 사회적 관심이 컸던 사건이다. 수사결과 언니는 가해자가 아닌 아동학대 피해자로 밝혀졌고, 계모와 아이들의 학대를 방관했던 친부에게 중형이 선고되었다. 학대가 피해아동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질 동안 이웃들은 보지 못한 척 외면했던 것일까.

어린이집 학대 사건이 뉴스를 타곤 한다. 아이에게 억지로 밥을 먹이거나 의자에 오래 앉아두거나 잡아 끌고 꼬집고 하는 모습들이 전파를 탄다. 그런데 누군가는 아이들을 돌보다 보면 그럴 수 있지 않은가하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이 오죽했으면 그러했을까 하는 말로 이정도 일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막상 수사가 시작되면, 언론에 보도되어 사회적 지탄을 받았던 것과는 달리 처벌이 경미한 정도에 그치거나, 처벌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우리 사회는 아동학대가 무엇인지 조차 개념정립 되어있지 않다. 이것이 학대가 된다는 명확한 사회적 기준이 없다. 아이를 키우면서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고, 이웃집에서 아이가 울고 큰소리가 나도 남의 집 일에 개입하기 어려운 사회다. 아동학대 피해자가 죽음에 이르렀던 앞서든 사건에서도 그랬을 것이다. 사회구성원이 느끼는 아동학대의 정의는 모호하다. 무엇이 학대이고, 어디까지가 훈육인지를 우리 사회는 잘 알지 못한다.

필자가 다루는 아동학대 사건들에서도 이런 모습이 두드러진다. 필자가 보기에는 학대로 보기에 충분한 사건들도, 수사 주체인 담당 경찰관이 학대가 맞는지를 의심하는 것을 느낀다. 피해자 변호사가 없는 자리에서, “이런 건 학대라 보기도 어렵습니다. 어머니”라는 말을 하며, 보호자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가하면, 아동의 어머니가 어린이집 학대를 신고하였는데, 아버지가 찾아와서 “애들 보면서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하면서 어머니를 나무라고, 자신의 아이가 피해자인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부모도 있다.

그래서 아동 학대 사건에서도 ‘미투’운동처럼, 사회적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미투 운동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미투 운동이 우리 사회에 성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킨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로인해 성범죄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던, 미처 고민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도 과도할 정도로 조심성을 심어주었듯이, 아동 학대 사건에서도 그와 같은 계기가 있어야만 사회적으로 아동학대의 개념도 더욱 분명해지지 않을까 싶다.

괌의 한 마트 주차장에서 차에서 잠을 자는 아이들을 방치했다는 이유로 현지 경찰에게 붙잡혔던 한국인 부모가 판사와 대형 로펌 변호사라 해서 이슈가 되었던 사건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미국의 기준으로는 아동에 대한 학대가 문제 되었던 사건이지만, 우리 사회의 기준으로는 부모의 직업이 이슈가 되었다. 우리 나라였다면, 주차장의 빈 자동차에 아이가 잠을 자고 있다고 해서 누군가가 경찰에 신고하는 것을 쉽게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부모가 금방 돌아올 것이라 생각하고 지나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동학대 피해는 누군가의 침묵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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