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주 수필가

고등학교 여름방학 때 일이다. 절을 다닌다는 얘기를 들은 친구는 반갑다는 듯 자기가 엄마와 자주 찾는 절을 가자고 나섰다. 목적지는 충북 괴산에 있는 각연사. 갑자기 나선 길인데다 우리끼리 헤매다 보니 절에 도착한 시간은 이미 해가 한참 진 뒤였다.

 늦은 저녁을 먹고 앉았는데 스님이 별을 보라고 부르셨다. 나는 산길을 걷느라 젖은 신발을 핑계로 친구에게 업어달라고 떼를 썼다. 친구는 순순히 등을 내줬고 나는 그 등에 업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헤아린다는 게 얼마나 의미 없는 일인지. 그저 바라만 봐도 좋았던, 내 삶에서 가장 많은 별을 본 순간은 그렇게 왔다.

 그 밤의 기억 덕분에 별은 해나 달보다 더 마음이 간다. 그동안 쓴 시를 훑어 봐도 별을 담은 게 많다. 그럼에도 정작 우주의 질서를 담아 오래 전부터 필독서로 알려진 《코스모스》(칼 세이건 글, 홍승수 옮김, 사이언스북스)를 이제 읽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1980년에 펴낸 책을 거의 40년이 지나 읽으려니 무조건 반성 분위기다. 내가 꺼려하는 과학 분야인데다 페이지가 700페이지나 돼 지레 겁을 집어먹고 도리질을 쳤던 것. 그런데 웬걸, 저자가 글을 쉽게 써서 그런지 어렵지 않게 읽힌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자문위원으로 보이저, 바이킹 등의 무인 우주 탐사 계획에 참여한 그는 대중에게 이 세상의 본질과 기원에 관한 정보를 쉽게 전달하기 위한 텔레비전 시리즈를 진행했고, 이 책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나 복잡한 개념을 반복해서 읽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출판됐다.

 그는 ‘진리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하나씩 그리고 조금씩 서서히 밝혀지게 마련이다. 우리 먼 후손들은, 자신들에게는 아주 뻔한 것들조차 우리가 모르고 있었음을 의아해 할 것이다. (중략) 수없이 많은 발견이 먼 미래에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며, 그 과정에서 결국 우리에 대한 기억은 모두 사라지고 말 것이다.’라는 세네카의 말로 말문을 연다.

 왜냐하면 과학의 자정 능력을 믿는 까닭이다. 그는 새로운 실험 결과와 참신한 아이디어가 나올 때마다 그 전에는 신비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있던 미지의 사실이 설명될 수 있는 합리적 현상으로 바뀌어 감을 안다. 그리고 우주는 걸음마 단계이므로 많은 사람의 관심과 지원이 우주과학을 발전시켜 갈 것을 안다.

 우주를 바라보면 깊은 울림을 가슴으로 느낀다는 말에 덩달아 호흡이 길어진다. 미지의 세계와 마주한다는 건 문외한인 내가 상상하기에도 가슴 떨리는 일인데 전문가인 그는 오죽할까. 우주에 대해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페이지마다 묻어난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별을 보며 살아왔다. 별에 관한 궁금증을 밖에서 찾았지만 알고보니 우주가 내 안에 있었다. 과학과 인문학이 서로 닿아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확인한다. 한낱 먼지에 불과한 우리가 별을 담고 있고 서로 얼굴을 맞대고 사는 기적, 사랑하며 살아가야 할 이유가 더 필요한가.

빅뱅 이론을 몰라도 / 별의 죽음과 폭발 / 혹은 그 때 생긴 원소가 / 사람이 되고 돌멩이 되었다는 / 전설 같은 지식 없어도 // 그저 바라만 봐도 / 마음 풀어지는 기적 / 몸이 알고 마음이 알아 // 우리는 모두 / 별의 조각을 담고 있다 / 가끔은 나도 / 별의 얼굴을 하고 있다 (별바라기 중, 황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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