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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안산시 관광협의회 미디어본부장 “시화호는 최고의 관광 인프라…지도층 인문학 성찰 아쉬워”
최제영 기자 | 승인 2019.07.16 17:05
이광수 안산시 관광협의회 미디어본부장은 카메라가 곁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언제 어디서나 카메라는 그의 분신이다. 역사적인 사진과 영상을 남기기 위해서 그렇다고 했다. 그는 어릴적 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다. 이 본부장은 인터뷰 중간중간에 안산발전을 저해하는 일부 세력이 있다며 심각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사진=최제영 大記者

이광수 안산시 관광협의회 미디어본부장은 카메라가 늘 곁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언제 어디서나 카메라는 그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역사적인 사진과 영상을 남기기 위해서 그렇다고 했다. 그는 어릴적 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다. 자신과 여동생은 시각장애 4급이다. 겨우 글을 보고 걸어다닐 정도다. 하지만 이모와 남동생은 맹인이라고 했다. 유전적 요인이라는데, 가슴아픈 얘기였다. 이광수 본부장은 초등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하고 야학을 통해 공부를 했다. 아내는 교회에서 만났다. 잘 나가던 회사를 박차고 나온 그는 시화호에 배가 떠다니는 상상을 노래했다고 했다. 지금 하는일이 돈 되는 일도 아니다. 그러나 미래안산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고 했다. 안산 지도층에 대한 반감도 드러냈다. 안산 발전을 위해 인문학적 사고가 부족하다고 했다. 이광수 본부장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봤다.

 

선천성 시각장애 딛고 밝고 힘찬 ‘미래안산’ 기대
잘나가던 회사 때려치고 안산시 관광진흥협회 창립

유람선 떠다니는 시화호는 오랜 꿈…반드시 이뤄질것
가난하지만 마음은 늘 풍요…태양광 추진 절대 반대

 

Q먼저 시력 얘기부터 듣고싶다.
-가슴아픈 기억부터 떠올려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선천적 즉 유전적 요인이라고 한다. 이모와 남동생은 나보다 더 큰 고통속에 살고 있다.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맹인이다. 한마디로 장님이다. 그에 비하면 나와 여동생은 나은 편이다. 눈을 뜨고 사물을 볼수 있으니 말이다. 의학적으로 ‘망막색소 파괴증’이라고 한다. 시각 장애 4급이다. 17살 부터 안경을 쓰기 시작했는데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다. 눈은 어둡지만 마음은 밝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Q불편함이 많았을 거로 생각된다.
-불편함이야 이루 말할수 없었다. 서울 안암동에서 태어났는데, 교실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어도 칠판에 보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공부를 할 수 있겠는가. 무척이나 힘들었다. 결국 집안 형편도 어려워 초등학교 4학년을 졸업하고 학교를 그만 뒀다.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진다. 아픔이 많았다. 참고 살아왔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의지 하나로 버텼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지금 생각하면 모든게 운명이라고 생각한다. 희망 하나로 살았다.

Q어렸을 때 사연이 있었나.
-내가 10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인민군 반공포로 출신이다. 거제도 수용소를 거친 분이다. 그런 상황에서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어려운 가정탓에 일찍 사회에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평화시장 메리야스 가게 점원을 시작으로 사회의 쓴맛을 보면서 살았다. 청계천 볼트가게 점원을 비롯해 을지로 화학약품 점원도 거쳤다. 철공소에서 어려운 일도 해봤다. 그런 가운데서도 책 읽은 일은 게을리 하지 않았다. 월급날이면 서점에 들러 책을 사서 필독하는 습관을 배웠다. 그 당시 책을 본게 지금 살아가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모든 것은 책에서 나온다는 법칙도 그때 알았다.

Q청년 시절은 어떠했나.
-22살때 금성전기라는 철구조물 회사에 입사했다. 그런대로 탄탄한 회사였다. 거기에서 노조위원장을 맡으면서 노동자의 아픔을 대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제도권 안에 있는 공부를 못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비해 몇배를 노력해야 했다. 교회에서 야학을 하면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부천내동 감리교회였는데, 그 교회 청년회 활동을 하면서 만났는데 경북 안동출신이다. 지금까지 아내덕으로 살고 있다.(웃음)

▲이광수 본부장이 지역사회 봉사에 공헌한 공로로 경기도지사 표창을 받았다.

Q본격적으로 관광협회 얘기가 궁금하다.
-반월공단에 있는 의성실업에 다닐때의 일이다. 1987년부터 1999년까지 다니던 회사다. 어느날 회사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우연한 생각이 나에게 스쳐왔다. 회사에서 훤히 내려다 보이는 시화호를 보면서 말이다.  ‘아~이곳에 유람선을 띄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장식한 것이다. 아마 환상같은 거였다. 믿지 못하겠지만 이런 생각을 한지 딱 이틀만에 회사를 때려쳤다. 어찌보면 황당무계한 일이었다. 그런 배짱이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겠다. 그러고 나서 안산관광을 공부하고 현장에 뛰어들었다.

Q 언제부터 관광협회와 인연을 맺었나.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에 안산시 관광진흥협회를 창립했다. 오재열 대부해운 사장이 회장으로 선임됐다. 당시 내가 사무국장을 맡아 협회를 이끌었다. 안산시의 관광업계 홍보와 관광자원 개발, 관광 인프라를 조성하는게 목표였다. 2년 뒤인 2005년에 80여개 업계 대표를 구성해 사단법인을 만들었다. 오로지 안산발전을 위한 발걸음이었는데 어려움도 참 많았다고 생각한다.

▲안산시 관광협의회가 관광수용태세교육을 받고 있는 장면이다. 이광수 본부장이 바라보는 안산은 수도권 최고의 보배라고 했다.

Q안산시와 협조관계는 어떠했나.
-안산시로 부터 음과 양의 협조는 있었다고 봐야한다. 2005년 ‘안산챔프카 월드시리즈’와 같은 해 ‘안산 빛 축제’ ‘안산시티투어’ 운영사업을 상호 협조속에 이어갔다. 그러나 한동안 침체기에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가 2012년 김철민 시장이 시 관광과 조직을 만들면서 활성화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내가 관광전문위원으로 위촉되어 2년간 활동했다. 당시 시와 협의해 만든게 ‘안산시 관광협의회’ 출범이라고 볼수 있다.

Q괄목한 만한 사업도 있었는지.
-안산시 관광협의회가 출범하고 대부 해솔길 걷기 축제 등 주민관광 마인드 교육을 실시하는 등 변화를 모색했다. 대부도 애코뮤지엄센터 운영사업도 의미가 있었고 시내 관광안내소 운영도 나름 보람이었다. 뿐만 아니라 안산시와 코엑스 및 킨텍스의 관광 박람회에 참여한 부분도 도움이 컸다. 개인적으로 돈되는 일은 아니었지만 안산의 관광발전을 위한 도약의 한 획이었다고 보고있다. 앞으로도 이 같은 일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Q특별히 기억나는 일은 뭔가.
-여러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2000년 자유센터에 디지털미디어아트 홈페이지를 만들었을 당시의 추억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영상제작 업체를 차리고 안산시 관광안내 사이트를 오픈 한 거였다. 한동안 음식업 지부를 비롯해 관광업계 종사자들과 발품을 팔아 광고영업을 하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그런것이 발판이 되어 오늘 안산이 있지 않나 싶은 생각도 한다.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Q안산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안산은 시화호라는 보물섬을 갖고 있다. 수도권에서 이만한 관광자원은 없다. 배를 띄우는 날을 기대하고 있다. 엄청난 도시환경을 소유하고 있는 안산이 자랑스럽다.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 도시에 산다는게 자랑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지도자들이 인문학적 사고가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 메인 그룹도 부족하다. 도시비전에 대한 철학도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소통의 부재다. 모든걸 결정해 놓고 통보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건 아니다. 시민사회를 들러리 세우는 경향이 많은 것도 문제다. 현장의 전문가 집단을 무시하고 있다. 나는 태양광 추진도 반대한다.

Q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은.
-시화호는 최상의 관광 인프라다. 그러나 반환경적인 일을 강행하는 쪽이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나에게 욕을 할 것이다. 관련 단체들은 알아들을 것으로 생각된다. 화정천과 안산천에 수천억 원의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변한 것은 별로 없다. 화랑유원지는 물이 유입되지 않는 용천수 호수다. 거길 가봐라. 모두가 썩어있다. 오염정도가 말이 아니다. 깊은 있는 성찰이 필요한 싯점이다. 정치적 목적에 사회단체를 이용하려는 세력이 많다. 반성해야 한다. 이런 일들이 안산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간곡히 바라건데 지도층의 깊이 있는 성찰을 바란다.

최제영 기자  cjy1010@ians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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