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끝나고 나면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될 거다. 초록이 뚝뚝 떨어질 여름을 그리고 있으려니 얼마 전에 읽은 《바깥은 여름》(김애란 글, 문학동네)이 눈에 든다.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저 혼자 겨울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담은 소설집이다.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책을 읽는 내내 길고 혹독한 취업 준비 기간을 겪은 큰딸이 생각났다. 안산에서 가장 좋다는 고등학교를 다녔음에도, 수능시험을 망치긴 했으나 그래도 괜찮은 대학을 다녔음에도 본인이 희망하는 직업을 갖는 건 쉽지 않았다.
허투루 준비하지 않는 딸의 성격을 아는 탓에 안타까움은 더 컸다. 답답한 마음에   점집을 찾았다. 당신 딸은 삶의 고난을 빨리 겪는 거다, 잘 견디면 앞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 보다 당분간 원하는 직업을 갖기 어렵겠다는 말의 힘이 더 세더라.


딸은 시험에 떨어질 때마다 울었고 밖으로 나가는 걸음을 줄였다. 지켜보는 우리도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인 건 당연한 일. 그만 하면 됐으니 다른 걸 생각해 보라는 말을 만지작거리면서 함께 겨울을 버텼다.


 책 속에 사는 사람들의 삶도 땡땡 언 겨울이다. 중심은 아니나 그렇다고 원 바깥으로 밀려난 건 아니라고 안도하는 얼굴들이지만 앞으로 닥칠 피로를 예상하거나 혹은 피곤이 뭔지 아는 얼굴들이라고나 할까.


영우의 부모는 지난 봄 영우를 잃었다. 후진하는 어린이집 차에 치여 그 자리서 숨진 것. 겨우 오십이 개월을 살았을 뿐이다. 어린이집 원장은 보험회사를 통해 민사상 손해배상을 했으니 무얼 더 바라냐는 투다. 게다가 영우 엄마의 직업이 보험회사 직원이란 근거를 두고 동네에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소문이 돈다. 찬성은 아버지를 여의고 할머니와 둘이 산다. 아버지는 트럭이 전복돼 고속도로에서 숨을 거두고 할머니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일을 한다. 그리고 찬성은 그 휴게소에서 자기만큼 외로운 개를 발견하곤 집으로 데리고 온다. 할머니만큼 나이를 먹은 에반과 찬성의 여름 이야기는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나는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저자도 같은 마음이었던 듯 ‘오래 전 소설을 마쳤는데도 가끔은 이들이 여전히 갈 곳 모르는 얼굴로 어딘가를 돌아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들 모두 어디에서 온 걸까. 그리고 이제 어디로 가고 싶을까.’ 라고 끝을 맺는다.


언제나 봄일 수는 없다는 말은 너무 상투적인가. 누구나 마음 한 켠에 그늘이 있다는 말도 위로가 되지 못하려나. 나도 그러하다는 공감은 싱거운 소리로 치부되려나. 그래도 할 수 없다. 사계절을 두루 겪어 보니 삶은 누구에게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결론에 이른 것을. 그래서 책 속에 담긴 ‘당신 인생에도 내 삶에도 더 이상 박수 치며 축하할 일이 생기지 않는 까닭’이란 말에 살짝 태클을 건다. 우리 인생에 여름은 분명히 온다. 물론 가을과 겨울도 오지만 그 뒤엔 봄이 기다리고 있음을 안다.


딸은 지금 여름을 산다. 사회 생활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는 중이지만 겨울을 견딘 힘으로 무던히 헤쳐 나가지 않을까. 그런 딸의 길을 응원하며 여전히 겨울인 사람들에게 곧 여름이 올 거라고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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