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검은색 봉지 하나가 떨어진다. 뭘까 싶어 뒤적여보니 뽕잎가루다. 순간, 뜨거운 감정 덩이가 올라온다. 냉동실 안에서 켜켜이 묵느라 후줄근해진 모습이라니, 죄책감마저 든다. 어찌 이걸 잊고 있었을까 싶다.


온도 차이로 금세 습습해진 봉지를 여니, 초록빛 사랑이 일렁인다. 지나간 시간이 무색하게 선명한 초록이다. 사람은 가도 사랑의 증거가 너무 말짱해 기분이 묘해진다. 뽕잎가루가 몸에 좋다며 건네던 시어머니의 얼굴이 단숨에 달려온다. 봄내 새순 골라 따 찌고 햇볕에 말려, 방앗간에 맡기지 않고 당신이 직접 가루로 냈다며 으쓱해하던 모습, 그 과정에서 믹서기가 두 대나 고장 났는데도, 괜찮다 웃던 모습이 또렷하다.


한여름에 무성해지는 초록빛처럼 시어머니의 사랑은 쑥쑥 자라기만 했다. 어찌 보면 유난스럽기도 했다. 시어머니의 레이더망에 걸려든, 몸에 좋다는 것은 다 우리 집을 거쳐 가야 했다. 시작은 프로폴리스였다. 살림살이에 비해 비쌌을 텐데, 시어머니는 일 년 내내 프로폴리스를 잊지 않고 보냈다. 몸에 좋다니 모종을 사다 심어 밭을 온통 개똥쑥밭으로 만들어버린 해도 있었다. 민들레며 각종 나물이 식탁에 오른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에미야~”로 시작해 당부하던 말들이 쌓여갈수록 부담스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시어머니의 주문 때문에 암 환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다른 가족들 앞에서 표 나는 시어머니의 챙김으로 눈치가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애면글면 챙기던 마음을 알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시어머니에게 많이 기대고 살았다. 원래도 살뜰했는데, 나처럼 암 투병을 한 다음 더 각별하게 챙긴 걸 알기에 시어머니의 진심을 그대로 다 받았다. 나로 향한 시어머니의 사랑이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자, 동지의식에서 깊어졌대도 좋다. 나 또한 하나로 연결 된 것 같은 느낌이 있어 시어머니가 더 든든하고 좋았으니까.


시어머니의 따뜻한 말을 잊지 않고 산다. 시어머니는 마지막이 곧 오리라는 걸 직감하면서 나를 걱정했다. “아픈 건 내가 다 가져 갈 테니, 넌 오래오래 잘 살다 와.” 시어머니의 정성 덕분에 앞으로 건강한 삶은 따 놓은 당상이라 믿는다. 든든한 백이다. 시어머니를 배웅하면서 속으로 약속 드렸다. 건강하게 잘 살다가 괜찮은 며느리로 다시 시어머니에게로 가겠다고.


무성의하게 받기만 했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니, 못한 일투성이다. 어쩌다 드린 전화에도 고마워했는데, 그 쉬운 일도 자주 못해 드렸다. 아이들과 떨어져 살다 보니 더 속속들이 와 박히는 미안함이다. 허망하게 놓치고 난 다음에 사랑이 더 깊어지나 표현할 길이 없다. 기제사상을 아무리 정성껏 차려 올려도 허기가 진다. 제사에 들이는 정성이면 훨씬 작은 노력으로 시어머니를 춤추게 했을 텐데.


옛말이 하나 그른 법이 없다. 기다려 주지 않는다더니, 가신 다음 아무리 아쉬워해도 소용없다. 내리 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더니, 친정 엄마라도 자주 찾아뵙겠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바쁘기도 하고 게으르기도 하고, 덥기도 하고. 참 핑계도 많다. 내리사랑은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시어머니에게 진 빚을 난 자식들에게 갚고 살겠지. 어느 날 불쑥 불거져 나오는 사랑의 증거 앞에 잠시 숙연해지겠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내겠지. 사는 게 그러니까. 치사랑은 어찌 이리 늘 뒷북이 되어버리고 마는지, 타이밍 맞추기 참 어렵다.


초록입자들을 가만히 만져본다. 차갑다. 잊고 있던 내 마음을 질책하는 죽비소리인 듯 또렷한 감각이다. 퍼뜩 정신이 난다. 까만 봉지 안에 잠자고 있던 사랑을 유리병에 조심스럽게 옮겨 담고 냉장실 맨 앞 칸에 둔다. 당분간, 삼시세끼 뽕잎가루 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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