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9.7.11 목 12:28
상단여백
HOME 수요초대석
안산에는 풍도해전의 아픔을 묻은 ‘풍도’가 있다안산도시공사, 역사체험 프로그램 풍도해전 시민 역사탐방 실시
양근서 사장 “풍도해전 세계사적 중요한 의미…관광자원 가치 충분”
정종길 위원장 “시민 탐방 정례화 지원 안산시의회 적극 나서겠다"
김석일 기자 | 승인 2019.07.10 19:32

야생화로 지역사회 알려진 서해상의 작은 섬 ‘풍도’가 청일전쟁을 아픈 역사를 품고 있어 향후 안산시 역사 콘텐츠로서의 가치가 충분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향후 청일전쟁의 시발점이 된 ‘풍도해전’의 살아 있는 과거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대부동 ‘풍도’가 새로운 역사 탐방지로 뜨고 있다.

안산도시공사(사장 양근서)는 4일 안산어촌민속박물관 주관으로 지역 향토사학자, 안산시의원, 안산시 산하기관장, 공모로 선발된 시민 등 4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풍도를 방문해 ‘풍도해전’에 대한 역사탐방을 실시했다.

신비의 섬 풍도

이날 탐방은 안산어촌민속박물관이 개최 중인 ‘풍도해전, 그날’ 특별전에 연이은 것으로 정진각 안산지역역사연구소장, 안산시 문화관광해설사의 역사해설과 안내로 양근서 안산도시공사 사장, 정종길 안산시의회 문화복지위원회 위원장, 김복식 안산시 체육회 상임부회장, 김희삼 안산시 청소년재단 대표이사, 정병국 상록청소년수련관 관장, 강성금 안산시 행복예절관 관장 등이 참여한 가운데 안산시 대부도에서 뱃길로 1시간 거리인 풍도 일대에서 진행됐다.

마을에서 언덕에서 바라 본 풍도 전경

안산시민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풍도해전’은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난 1894년 풍도 앞바다에서 일본군 함대가 청군 함대를 공격하면서 일으킨 사건으로 이 전투를 시발점으로 청일 전쟁이 발발했고 당시 조선은 열강들 간의 침략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정진각 안산지역역사연구소장은 “풍도해전은 우리 농민 수만 명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아픔의 역사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는 슬픔의 역사”라면서 “부끄러운 역사를 감추지 말고 되풀이되지 않도록 외부에 널리 알려야 먼 미래 반성할 역사를 만들지 않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산지역역사연구소 정진각 소장의 역사탐방 강의 모습

정진각 소장은 총 2강의 역사 강의를 통해 이날 참가한 시민들과 유관기관장들에게 그간 몰랐던 역사적 진실과 숨겨진 에피소드를 생동감 있게 전달했다.

최근 안산도시공사가 ‘풍도해전’에 유달리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양근서 사장이 지난해 7월 취임한 뒤 향토역사가로부터 풍도해전의 역사적 가치에 대해 청취한 후 부터다.

풍도 선착장

안산도시공사 양근서 사장은 “풍도해전은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탐방 관광자원으로서도 가치가 있다”며 “잊혀져가는 역사를 발굴해 재조명함으로써 역사적 교훈을 얻을 뿐만 아니라 풍도와 대부도 일원이 새로운 역사탐방지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안산시 행정선에서 풍도에서 진행될 시민 역사탐방 프로그램을 살피고 있는 안산도시공사 양근서 사장(맨 우측)

이러한 안산도시공사의 발걸음에 안산시의회도 함께 동반자 역할을 해나갈 것임을 약속했다. 이날 역사탐방 프로그램을 끝까지 함께 한 안산시의회 정종길 문화복지위원장(민주당)은 “일부에서는 풍도를 외부에 알리면 자연이 훼손된다는 우려를 표명하지만 본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시민들이 아픔의 역사를 제대로 안다면 ‘풍도’와 ‘풍도해전’을 기억하는 이들이 늘어나 미래 안산시의 역사책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안산시의회 정종길 문화복지위원장이 풍도 마을 주민과 이야기 하는 모습

정 위원장은 그러면서 “이르면 올 하반기, 늦어도 내년부터는 분기별로 시민들을 탐방 프로그램에 초대할 수 있는 정례방안과 예산을 마련하도록 시의회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약속했다.

정종길 시의원은 풍도 주민을 위해 LED 등 교체봉사를 실시하는 한편, 올 하반기에 지하수 주민사용을 위한 기초공사를 실시하는데도 앞장서고 있다.

한편, 안산도시공사 관할 안산어촌민속박물관의 ‘풍도해전, 그날’ 특별展은 풍도해전 발발 125주년 기념한 것으로, 당시 침몰한 청나라 보급선 고승호 출토 유물 및 삽화 등 다양한 역사 자료를 전시하며 31일까지 열린다.

◆풍도의 역사-‘풍도(豊島)’는 풍도‘(楓島)’다

행정구역으로 안산시 단원구에 소속된 ‘풍도’는 안산 땅이지만 안산에서는 하루 한차례 운행하는 정기여객선을 타고 2시간 남짓 가야하고 당일로 되돌아올 수 없는 곳이다. 해안 전체가 자갈밭으로 이루어져 있어 서해의 다른 섬과는 달리 모래사장과 갯벌이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풍도는 서해 경기만 연안의 끝 섬이므로 예부터 군사, 해상교통 요충지였다. 현재 풍도에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 두 그루는 백제를 치기 위해 당나라 군사를 싣고 지나가던 소정방이 들러 심었다는 전설을 지니고 있다. 특히 고려 때부터는 중국으로 오가는 항로(航路)상에 위치한 까닭에 역사의 기록이 등장한다.

정진각 소장

『고려사』 기록에 의하면 1352년(공민왕 원년) 3월 “포왜사(捕倭使) 김휘남(金暉南)에게 명하여 전함 25척을 거느리고 왜적을 막도록 하였는데, 풍도(楓島)에 이르러 왜선 20척을 만나 싸우지도 않고 퇴각하였다.”라는 기록으로 보아 왜구가 풍도 주변에 머물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에는 풍도에 관한 기록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일성록(日省錄) 1826년(순조 26) 5월 11일조에는 풍도 수호별장감관(水護別將監官)이 서산 인근에서 표류한 15인을 보고한 일도 있었다. 조그마한 섬에 ‘별장’직책을 두었다는 것은 풍도가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을 하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것은 현지에 남아있는 고문서로도 알 수 있다.

야생화의 천국 풍도에 핀 들꽃

풍도는 예부터 단풍나무가 많아 ‘풍도(楓島)’라고 불렸다. 지금도 해안을 따라서 청단풍나무가 많다. 따라서 고려사,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모든 우리나라 문헌에는 ‘楓島’라고 쓰였다. 고려 조선 1천년을 이어온 이름이다.

그러나 청일전쟁이 발발되었을 때 우리문헌에는 ‘楓島’라 기록되었으나, 일본 문서에는 ‘豊島’로 기록되기 시작하였다. 이후 우리나라 문헌에도 ‘豊島’로 쓰이기 시작했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으로 농민군에게 전주를 점령당하자 조선정부는 청(淸)에 원병을 요청하였고 청국군이 들어오자 일본도 양국간의 조약을 이유로 조선에 군대를 파병하여 양국 간의 대치상황이 전개되었다.

풍도 섬 내에 위치한 풍도 등대를 시민들이 오르는 모습

안성천을 중심으로 주둔하고 있던 청나라는 증원군을 파견하였고, 7월25일 새벽 병력수송선의 호위임무를 마치고 아산에서 기지인 여순항으로 귀환하던 청국 군함을 풍도 앞바다에서 일본 해군 쾌속 순양함 3척이 기습 공격하여 심각한 손상을 입혔다. 뒤이어 영국 상선 깃발을 게양하고 청국 군인 1,220명과 12문의 대포를 싣고 아산으로 가던 고승호(高陞號)를 공격하여 침몰시켰다. 이것이 '풍도해전이며' 청·일전쟁의 시작이었다. 결국 풍도해전은 일본의 대승으로 끝났고 일본은 이후 서해안의 제해권을 장악했다.

고후득에게 내린 풍도수호별장 전령(왼쪽)과 광서 17년(1891년)의 호적(우측)

(▶자료 제공-정진각 안산지역역사연구소장)

 

김석일 기자  mo3mo@hanmail.net

<저작권자 © 반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석일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704-1 대우빌딩 305호 반월신문사  |  Tel 기사제보 : 031)415-5533, 6644  |  팩스 031)415-2237
창간일자 : 1990년 11월 1일  |  발행인 : 홍일호  |  e-mail : webmaster@banwol.net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일호
Copyright © 2008 - 2019 반월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