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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인연
반월신문 | 승인 2019.07.04 19:36

시절인연은 불교용어로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때가 있다는 뜻이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나게 될 인연은 만나게 되어 있고, 무진장 애를 써도 만나지 못할 인연은 만나지 못한다는 의미.

그런 인연이 닿아 캘리그라피를 시작했다. 훌륭한 선생님을 소개한 친구도, 가르치시는 선생님도, 같이 배우는 언니도 참 고맙고 특별한 사람들이다. 단순히 글씨나 글자를 배우는 게 아니라 살아갈 힘을 얻고 지친 마음을 위로받는다.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니 순전히 그런 인연에 기대 버텨온 것 같다. 비구니가 되고 싶다는 말에 머리통이 예쁘질 않아서 포기하는 게 좋을 거라고 다독였던 사람이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육개장을 펐던 사람이나 대학원을 가라고 들쑤셨던 멘토나...

최인호 작가의 〈인연〉(랜덤하우스)은 그 글이 내 마음과 닮았다. 그는 ‘인연이 소중한 것은 반짝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의 빛을 받고, 너는 나의 빛을 받아서 되쏠 수 있을 때 별들은 비로소 반짝이는 존재가 되는 것’이라는 말로 글을 시작한다.

책은 한 폭의 수묵화다. 캘리그라피로 쓴 책의 제목도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백종하 사진작가의 사진으로 글은 한층 더 풍부하고 깊은 향을 내는데 인연에 대해서 서툴게 배우고 서툴게 익숙해지는 사람이라는 저자의 고백은 너무 정직해서 아프고 눈물이 난다.

그는 어릴 때부터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해질 무렵 집집마다 엄마들이 “그만 놀고 들어와라”하고 소리 지를 때도 땅거미가 내리고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캄캄해져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가고는 했고, 고등학교 때도 집 방향이 다른 친구와 몇 시간씩 거리를 걷곤 했다.

그런 성정이니 물건이라고 함부로 여길 리가 없다. 그가 쓰는 물건들은 대부분 수십 년을 함께 한 것들이다. 딱히 알뜰히 절약하거나 소박한 것을 좋아하는 미덕 때문이 아니라 깊이 정들었던 것은 헤어지기 싫어서라고.

가만히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대중매체를 통해 익숙한 유명인이 참 좋은 사람으로 다시 다가오고, 그에게 한 번 스쳐 지나가는 도움을 줬던 사람들이 내 이웃이 되어 마주 보고 웃는다.

풍경, 사물이나 시간과의 인연에 서툴고 어리숙하다는 저자의 고백은 겸손으로 보인다. 반면에 나쁜 인연에 사정없이 휘둘리고 좋은 인연을 잘 가꾸지 못하는 내 어정쩡한 삶은 반성이다.

나는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을 쉽게 잊는 그릇이 못된다. 앞에선 대거리를 못하고 돌아서서 우는 성격 탓인가. 자기 이익에 따라 오늘 좋았던 사람을 내일 밀어내고 또 찾는 그런 마음이 도저히 감당하기 힘들다. 그야말로 사회 적응도 빵점.

그런 시간 끝에 시절인연이 온 거다. 어떻게 잘 만져야 하나. 일단 힘을 기르는 중이다. 나 자신과 소중한 이름들을 잘 지키기 위해서. 불편한 자리를 참는 대신 즐거운 자리에 함께 앉아서 마음껏 행복하려고 자투리 시간을 계속 늘리고 있다.

‘사랑은 지금 당신 곁에서 당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 사람의 얼굴 속에 있다. 그 사람의 환한 미소 속에 있다.’는 저자의 말을 꼭 쥔다. 그런 사랑을 하겠다. 서로 기쁜, 정다운 그림을 그려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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