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바스키아'라는 영화를 감명 깊게 본적이 있어 진흥초등학교 학부모 간담회 때 아이들이 그림을 낙서처럼 그려도 그 또한 예술이라며 바스키아에 대해서 강의를 한적이 있다.장 미셸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는 낙서인지, 작품인지 분간이 안 되는 파격적 화풍으로 1980년대 미국 미술계를 풍미한다.

작가는 자신의 모습도 악마를 연상케 하는 강렬한 터치와 색감으로 표현했다.

바스키아는 정규 미술 교육을 받은 적 없는 '천재 미술가'로 평가받았고 특히 그의 작품은 '암시적인 이분법(부와 가난, 통합과 분리, 내면과 외면 등)에 초점을 맞췄다.

팝아트 계열의 천재적 자유구상화가로서 지하철 등의 지저분한 낙서를 예술 차원으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와 그림의 전유를 통해 이미지와 텍스트, 추상과 형체, 역사적 정보와 현대 비평을 긴밀히 결합시켰다.

뉴욕의 흑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스프레이, 마커, 오일 크레용을 사용해 뉴욕 소호 거리의 외벽에 '낙서그림'을 그리는 그라피티 그룹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팝아트의 부흥과 함께 뉴욕 화단의 중심부로 진입했다. 8년의 짧은 활동 기간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바스키아는 1988년 뉴욕서 헤로인 중독으로 27세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다.

한편 그의 자화상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5,730만 달러(668억600만원)에 팔렸고 무제라는 작품중 하나는 1200억원에 팔리기도 했다.

열일곱 살 때부터 스타가 되길 꿈꾸며 내 영웅들 찰리파커, 지미헨드릭스등을 생각하곤 했다한다. 그들이 어떻게 해서 유명해졌는가를 낭만적으로 생각하며 바스키아 자신이 성공에 대한 열망이 키워 나아갔다.

앤디 워홀을 만나 유명해지고 나서 더욱 수퍼스타처럼 행동하기도 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고가의 아르마니 정장을 입고 그림을 그리는 둥 엄청난 부를 쌓았다.

물론 이 또한 자신이 수퍼스타라는 점을 감안하여 한 행동일 수 있고,그 모든것은 바스키아만이 알겠지만 당시 최고의 수퍼스타와 연애를 하던 마돈나와도 열애설이 터지며, 바스키아의 유명세는 엄청나게 커졌고, 장 미셸 바스키아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모르는 사람이 없게되었으며 미국 미술시장에서도 바스키아를 밀어주던 추세였다.

아마 앤디 워홀이 안죽었더라면 바스키아도 약물중독으로 죽지 않았을텐데, 그렇다면 지금 바스키아는 어느정도의 위치까지 갔을까 내심 궁금하기도 하다.

한 기자는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림 안에 있는 이 글을 해석 해 주시겠습니까?”

“해석이요? 그냥 글자에요 ㅎㅎ” “그 글자들은 어디서 따온 겁니까?”

“모르겠어요” 음악가에게 음표를 어디서 따오는지 물어보세요.

“당신은 어디서 말을 따옵니까?”

기자에게 자신의 표현은 마음에서 나온 것 인데 그걸 설명 해 달라 하니 아주 명쾌하게 답지를 내준 인터뷰 내용으로 유명 하기도 하다.

일반인 봐서는 정말 이게 낙서지 그림이냐고 묻겠지만 그의 작품 가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자라나는 우리아이들의 낙서도 아마 그들 나름 대로 뜻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작권자 © 반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