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생이 수업 중에 디오니소스가 뭐냐고 물었다. 디오니소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술의 신. 로마 신화에서는 바카스라고 한다. 중학생이 왜 술의 신에 꽂혔을까 궁금했는데 방탄소년단의 신곡이란다. 그룹 멤버인 제이홉이 작사, 작곡을 했다는데 노래를 들어보니 정말 술이 가득 담겼다.

내친 김에 우리 생활 곳곳에 숨어 있는 신화의 흔적을 슬쩍 흘렸더니 눈이 동그래진다. 어벤저스 영화에 등장하는 토르는 북유럽의 천둥 신이다. 미국의 스포츠용품 제조회사인 나이키는 승리의 여신 니케를 영어식으로 부른 이름이다. 나이키의 심벌은 승리의 V와 나이키 여신의 날개를 상징하고.

내가 이런 유용한 정보를 어디서 얻었을까. 《뉴욕에 헤르메스가 산다》(한호림 글, 웅진지식하우스)가 다름 아닌 비결. 현대의 최첨단 문명과 생활 속에 살아 숨 쉬는 그리스 신화의 탐색 기행기다. ‘어떤 사람은 죽은 신화를 읽고 나서 금방 까먹고, 어떤 사람은 산 신화를 보면서 오래오래 즐긴다.’ 프롤로그 첫 문장인데 내가 바로 이 문장의 산증인인 셈이다.

학교에서 신화를 배울 때는 지루하기만 했다. 도대체 남의 나라 신화를 왜 그렇게 들먹이는지 이해불가. 만화로 된 시리즈물이 히트를 칠 때도, 딸들이 코를 박고 재미있게 읽을 때도 여전히 시큰둥했다. 신들이 바람을 피우거나 질투를 해서 벌어지는 사건 등을 통해 뭘 얻으라는 건지 통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고대인들이 다양한 신을 만들어낸 이유와 그 결과로 철학, 과학, 의학 등 다양한 학문이 발전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지만 이해가 즐거움과 재미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게 공부의 한계 아니던가.

그러다가 이 책을 읽고 신화와 사랑에 빠졌다. 저자는 ‘이건 몰랐지?’라며 부지런히 신들을 코앞에 들이민다. 알고 보니 각종 건축물과 조각상은 물론이고 상표명이나 간판 디자인까지 신화는 우리 곁에 무궁무진하게 많더라.

세계적인 타이어 회사 ‘Goodyear’ 심볼 가운데는 과학과 상업의 신 헤르메스의 날개 달린 신발이 그려져 있다. 일본의 혼다 오토바이 심벌에도 헤르메스의 날개가 있고. 전령과 변론, 심지어 도둑의 신이기도 한 그의 흔적은 세계 곳곳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거다.

뿐인가. 꿈의 군함인 이지스는 아테나 여신의 ‘무엇이든지 막는 방패’에서 따온 이름이고, 목성의 위성은 모두 제우스와 관계를 맺은 애인들의 이름이다. 소방차와 구급차의 싸이렌도 특별한 의미가 담겼다.

이렇듯 신화는 고대에 묻힌 게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이다. 94년생 제이홉이 디오니소스를 불러왔듯 드라마의 한 장면이나 광고 속에서 신화 속 인물을 만날지 모를 일.

그러므로 반갑게 인사하기 위해, 창작의 길에서 도움을 받기 위해 신화는 챙겨 읽어야 하리라. 저자가 즐겁게 발품을 팔아 펴낸 이 책이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책을 읽은 김에 올빼미 인형 몇 개를 들여놨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 어깨에 늘 앉아 있었다는 그 새. 뜬금없이 들여놓은 이유를 궁금해 하는 식구들에게 말없이 이 책을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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