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을 맞추어 살기란 참 힘들고 어렵다. 조그만 오해로 것 잡을 수 없는 상황이 오곤 하는 경우도 많다. 오해도 풀기 쉬운 오해가 있고 아예 풀리지 않는 오해도 있다. 진짜 오해인지 그런지는 알 수가 없다.

서로가 수용하고 충분히 받아들이기 까지는 세월이 때론 말해주기도 하지만 영원히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주말에 가족과 함께 ‘기생충’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기생충이라는 단어처럼 더불어 사는 가족의 식구들이 한 사람 한사람 과외선생님으로 운전기사로 가사도우미로 채용되어 가는 과정에 채용시스템이 박사장 아내(조여정)가 종사하는 사람들의 추천을 받으면서 모든 구성원이 바뀌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전에 일하던 사람들이 억울하게 잘려나간다. 물론 영화이기는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그런 일은 많이 있어 보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온 가족이 부유한 집안에 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과정을 영화로 잘 엮어가는 장면들이 참 흥미롭게 구성이 되었고 끝내는 지하에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어 지내는 전 가사도우미의 남편의 등장은 영화를 극적으로 구성하는 좋은 기폭제 역할을 한다.

캠핑 갔던 가족들이 돌아오기 전까지 마냥 즐거운 파티를 벌이던 가족들에게 갑자기 등장하는 전에 일하던 가사도우미의 방문은 영화를 더욱 숨 조이게 한다. 문을 열어주지 않다가 결국 문을 열어주게 되고 지하에 두고 간짐을 찾기 위해 내려간 곳은 비밀 통로 안에 숨어 지내는 동안 남편이 제대로 먹지 못해 쓰러져 있다.

기생충이라는 영화제목 자체에 무슨 영화인가하는 많은 궁금증을 갖게 했는데 일가족이 한 가정에 일하는 사람으로 채용되면서 부유한 집안과의 너무 대조적인 설정을 해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생활을 일부 보여주며 냄새나는 부분을 건드리면서 영화는 조금씩 무서워져간다.

결국은 멋진 파티장에서 살인이 벌어지고 이런 살인이 벌어지는 과정에서도 부유한 집안의 가장 역(이선균)이 열쇠를 찾기 위해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밀치고 코를 잡은 채 피신하려는 걸 본 운전기사로 일하는 역의 송광호가 분노하면서 결국은 부유한 집안의 가장을 살해하는 모습으로 영화는 클라이막스를 맞는다. 그러면서 중간 중간 벌어지는 인사채용에 대한 부분이 결국은 한 가정의 파탄을 가져오는 부분은 균형이 깨져가는 가정을 보는 것 같아 영화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과정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부유한 집안의 아내로 나오는 사람의 역할이 집에서 가사도우미를 두고 편안한 생활을 즐기는 일반 주부와는 다른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부를 누리면서 잘사는 모습에서 남편에게 잘 보이려고 알아서 한다는 게 결국 비극을 맞게 되는 걸로 영화가 전개되어 간다.

영화를 재미있게 하려는 의도이긴 한데 한 가정의 일하는 사람채용에서도 부부 서로간의 소통과 균형이 아주 중요해 보인다. 양팔저울에서처럼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는 중간기준이 정확히 서야 되고 양쪽 균형을 맞추기 위해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하고 그러면서 균형을 맞춘다. 혹 더러는 중간의 기준을 옆으로 이동하면 균형이야 맞겠지만 저울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더러는 기준을 옮겨야하는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도 있겠지만 기준은 어디까지나 기준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더하고 빼고는 얼마나 더 가지느냐 못 가지냐의 욕심의 차이인 것 같다. 자칫 욕심으로 인해 양팔저울의 균형을 잃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오해와 이해의 차이가 그렇듯 진실을 잘못알고 있는 게 오해라면 거짓 자체를 잘못알고 있는 것도 오해로 밀어붙이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 같다. 뭐를 이해한다고 할 때 얼마큼을 덜고 이해해야할지 얼마만큼을 더 올리고 이해를 해야 될지는 가끔 양팔저울의 기준을 기울어진 쪽으로 무리하게 옮기려하는 무리한 시도를 하면서 살아가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판단의 기준은 늘 자기위주로 하기는 하지만 균형을 잡기위해 애쓰는 사람도 많다는 걸 생각하면 서로의 기준에 감사하는 마음도 많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처럼 본 한편의 영화가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참 재미있는 영화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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