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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양순 수필가-작은 다리가 되다
반월신문 | 승인 2019.06.12 09:39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 주고 싶어 하는 것. 어쩌면 가난한 생이 내게 던져 준 가장 큰 사치인지도 모른다. 원곡보건소에서 행정인턴 사원으로 8개월가량 근무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의 경험은 특별 했다.

나의 업무는 출근과 동시에 청소부터 시작했다. 힘들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할 일이었는데 그것이 나였다. 기꺼운 마음으로 열심히 하다 보니 주변에서 인정도 해주고 격려도 해주었다. 그곳을 찾아오는 민원인은 대부분이 외국인이다. 어디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청결과 위생은 기본이다.

원곡동에는 가까운 중국부터 시작해서 러시아 연방, 동남아시아 멀리는 서남아시아인 등 다국민이 밀집되어 살고 있다. 대한민국 속에 작은 지구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곡보건소는 이들에게 특별한 곳이다. 아픈 사람에게는 어느 것도 묻지 않는다.

오로지 인도적 차원에서 그들을 포용해 주는 동반자적 의미를 갖는다. 아프거나 비자관련 민원 상담을 위해 찾아온다. 더러는 이웃집에 마실 온 것처럼 종일 쉬다가 가는 사람도 있다.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다름을 빼고 나면 웃는 것, 아프다고 울상 짓는 것, 억울해서 분노하는 것들의 경계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어떤 날은 개와 고양이처럼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을 때도 있지만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 곧 해결된다.

시간이 쌓이다보면 언어는 달라도 왜 왔는지 표정이나 행동을 보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대한민국이라는 울타리가 위대하게 느껴진다. 말 한마디, 표정하나 하나가 그들에게는 나 개인이 아닌 대한민국으로 꽂힌다. 어느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람이 되어있기도 했다.

꼭 거국적 책임감이 아니더라도 그들이 내 나라에서 느끼는 체감온도는 몇 도나 될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머문다. 사람은 다 똑같다. 피부 색깔에 상관없이 나라에 상관없이 모두가 아프면 울고 외로우면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고 떠나온 고향을 그리는 것. 삶이라는 드라마는 다 그런가 보다. 살기위해 이역만리를 마다하지 않고 날아 온 그들의 내일이 밝았으면 좋겠다.

보건소를 찾는 외국인 중에는 고려인이나 조선족이 많다. 개인적으로 조선족이라는 말보다 고려인이라는 말이 더 아프게 들린다. 조선을 지나 대한민국으로 진화하지 못한 민족의 상흔이라는 나의 편견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 때문에 그들이 그곳에서 살게 된 것은 아니지만 미안한 생각으로 마음이 일순간 마음이 뜨거워져 오기도 한다. 그들에게 평화가 함께 하기를.

민원인 중에 두어 달 가량 꾸준하게 치료를 받던 고려인이 있었다. 그녀는 다리가 불편했다. 열악한 근로 조건에서 돈과 바꾼 그녀의 다리다. 외로운 인어공주에게 나의 무엇이 위로가 되었던 모양이다. 그녀가 하루는 내 손을 잡고 말을 했다. 많이 아팠는데 여기 와서 좋아졌고 며칠 후면 한국을 떠난다고.

다시는 오지 못하니 아쉽다고 했다. 편하게 해 주어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러시아에 돌아가서도 나를 위해 기도해 주겠다는 것이다. 마음이 뭉클했다. 내 손을 잡고 있는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두 달이라는 짧은 만남에서 그녀의 마음 온도는 정상이었다. 적어도 나와의 사이에서, 원곡보건소와의 사이에서는 말이다.

그러면 된 것이다. 가끔 그녀가 생각 난다. 개인적으로 나를 위한 기도의 향이 어디선가 피어난다고 생각하니 좋고, 그녀에게 대한민국의 따뜻한 한 줄기 햇살의 기억이 있을 테니 다행이다. 해맑고 천진스러운 그녀의 미소가 그립다.

짧은 기간 강한 인상을 받은 원곡 보건소, 지금은 그곳 환경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여전히 소외되고 아픈 이들에게 그곳은 심장과 다름없는 곳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작은 배려와 친절은 생각보다 커다란 힘을 발휘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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