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득한 옛일이다. 취업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이니 30여년을 족히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때부터 컴퓨터가 대중화되기 시작했고, 시사상식 책 한 귀퉁이를 컴퓨터와 체스 대결을 벌일 러시아 카스파로프가 차지했다.

처음 대결은 사람의 완승이었다. 1989년에 있었던 첫 대결에서 카스파로프가 가볍게 제압해 줌으로써, 인간과 컴퓨터의 대결은 1회성 해프닝으로 끝나는 줄 알았다. IBM측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딥블루를 끊임없이 업그레이드해서 결국 7년 만에 인간으로부터 승리를 얻어냈다.

당시 충격이 컸지만, 사람들의 호기심은 바둑 대결로 옮겨갔다. 경우의 수가 무한대급으로 많고, 추론이 필요한 바둑에서는 컴퓨터가 인간을 능가할 수 없을 거라는 믿음은 20여 년 동안 지켜지는 듯했다. 이세돌이 알파고에 지자 실망과 우려로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을 여럿 보았다.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든 말든 과학은 계속 편리한 쪽으로 발전하기 마련이다. 그럴수록 지적인 인간과 인간을 모방한 인공지능을 구별하려 들지만 그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자율주행 차가 거리를 돌아다니고, 일본에서는 글을 쓰는 로봇이 쓴 소설이 문학상 1차 심사를 통과하기도 하고, 미국의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인공지능 화가 오비어스가 그린 초상화가 약 5억에 팔려나가기도 했다. 한마디로 말해 인간 고도의 정신 영역인 예술 분야까지 넘보는 게 오늘날 인공지능의 현주소다.

한 술 더 떠, 이젠 사랑마저 컴퓨터가 먼저 안다고 선언한다. 영화 ‘her, 그녀’ 속 시간은 머지않은 미래 2025년이다. 사람들은 서로간의 소통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핸드폰이나 컴퓨터 속 세상에 심취해 있다.

거리에서나 전철 안에서나 사람들은 눈앞에 있는 타인이 아닌, 사이버 세상에 집중한다. 서로가 독립된 섬으로 떠도는 모습이다. 반면, 컴퓨터의 세계는 친절하다. 역할놀이를 바꿔하듯, 인간은 기계 얼굴을 하고 있는데, 컴퓨터는 인간의 모든 욕구를 들어주고 조언까지 서슴지 않는다.

아내와의 소통에 실패한 주인공을 외로움에서 건져내고 사랑을 알게 한 것 역시 컴퓨터 운영체계 ‘her’다. her, 즉 사만다는 있는 그대로 상대방 받아들이기, 상대가 빛날 수 있게 배려해 주기, 너의 것이지만, 너의 것이 아닌 존재 인정하기 등이 사랑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한다.

인간이 미래에 사만다 같은 컴퓨터 운영체제를 구입하지 말란 법은 없다. 금세 사랑의 속성을 습득하고 맞춰 주는 인공지능은 상처 받기 싫어하고 외로운 인간을 제대로 토닥일 수 있겠다.

바야흐로 사랑도 살 수 있는 시대가 올 것 같다. 빅스비나 쉬리, 지니같이 단순한 체계에도 호기심과 즐거움을 느끼는데, 감정을 나눌 수 있는 운영체계라면 매력도는 훨씬 높아질 것이다. 이미 SF 영화 속의 발전적인 상상력들이 훗날 현실로 실현되는 일들을 많이 목격해 왔다.

아는 만큼 인정하며 세상을 바라봐왔다. 컴퓨터든 사람이든 우주라는 거대한 세계 아래서 결국 물질이이라는 한 이불을 덮고 있다. 감정마저도 컴퓨터에 의존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인간에게 쉬운 건 기계에 어렵고, 기계에 쉬운 건 인간에게 어렵다.”던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벡의 말도 모호해지고 있다. 본질에 가 닿으려고 노력한다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가 무에 그리 중요할까나. 대결보다는 공존과 조화의 필요성에 조심스레 손을 들어본다.

우리가 느끼는 시공 너머에 존재하는 그 무엇, 4차원의 세계를 넘어서는 곳에서 오는 힘을 느낀다. 30년 전에 일었던 호기심은 더 큰 세계를 알아가는 발판이 된 셈이다.

세상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변할 것이다. 그럴수록 "사랑을 알아?"에 대한 답을 구하는 데 게을리하지 말 일이다.

사랑은 미래의 그 어느 날에도 변함없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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