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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원 연가
반월신문 | 승인 2019.06.05 13:32

단숨에 끌렸다. 공간에 가득 차 있는 우리 옛것들이 일제히 도열해 나를 맞는 듯했다. 눈 굴러가는 소리가 난다면 단번에 쫓겨날 정도로 빠르게 전체를 훑어 내리는 동안, 감전이 된 모양이다.

소소원은 원래의 목적을 잊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크고 작은 옹기와 항아리, 나무평상, 수놓인 베갯잇과 광목방석, 색 고운 명주저고리, 녹슨 손수레, 그에 멋들어지게 어우러진 야생화 들은 내게 성큼성큼 말을 걸어왔다. 캘리그래피 선생님을 처음 만나 뵙는 자리임에도 눈길은 자꾸 어깨 너머로 넘어갔다. 산만한 아이처럼 제사보다는 잿밥에 관심을 두고 고개를 돌리기 바빴다.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옛것을 좋아했다. 인절미를 좋아하는 아버지를 위해 엄마가 절구질을 할 때, 절구통 옆으로 빗겨간 세월을 들여다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절굿공이를 견뎌내기 힘겹다는 듯 절구통 옆으로 세로로 난 커다란 틈을 바라보며 절구의 내력을 읽어내려 했다. 그림 그리는 재주가 있다면 지금이라도 절구 모양대로는 물론, 절구통에 박힌 옹이, 그 위에 내려앉았던 세월의 더께까지 그대로 그려낼 수 있다.

디딜방아를 찧으러 가는 날은 소풍날처럼 들떴다. 다리를 있는 힘껏 눌렀다 놓으면 공이가 돌확으로 쾅하고 떨어지는 소리는 얼마나 통쾌했던지. 엄마의 구호에 맞춰 언니와 낑낑대며 방아를 찧으며 사람들의 손때가 묻어 반질거렸던 손잡이에 묘한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기계식 방앗간이 생기자 동네사람들이 허물어버린 디딜방앗간을 많이 속상해했다.

꺼내려니 끝도 없이 옛 물건에 대한 기억이 딸려 나온다. 엄마의 재봉틀도 내겐 눈요깃거리였다.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엄마 손을 눌러버릴 것 같은 노루발, 타작마당에 선 것같이 엄마가 리듬감 있게 밟아대는 대로 춤추던 발판을 쳐다보는 게 즐거웠다. 장롱을 들이면서 엄마는 유행이 지났다고 한쪽 벽면을 가리던 수놓인 광목천을 버렸다. 농사일 때문에 투박하고 거친 엄마 손마디만 보고 자란 내게 수놓인 천은 버리기에 너무 아까웠다. 겨우 지켜낸 방석 커버 하나를 나는 지금 소중하게 지니고 있다. 열여덟의 엄마가 수놓은 탐스런 목단꽃을 지켜낸 내가, 대학교 때 도서관에서 민속학 책에 파묻혀 지내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쉬움을 끄트머리로 옛 물건에 대한 기억은 한동안 잠자고 있었다. 언젠간 친정집에 있는 옛 물건들을 우리 집으로 옮겨놓아야겠다던 야무진 꿈은 뜻하지 않게 깨졌다. 인테리어업자들이 순박한 엄마에게 돈 몇 푼 쥐어주고는, 앤틱 분위기 나는 물건들을 모조리 쓸어가 버린 탓이다. 절구나 재봉틀뿐만 아니라, 엄마가 두부콩을 갈아대던 거칠고 차가운 맷돌, 아버지가 소꼴을 가득 싣고 들어오던 지게, 자칫 잘못하면 재가 튀어 하얀 교복이 엉망이 되게 만들던 숯불 다리미, 구수한 쇠죽이 그득했던 구유가 사라진 시골집은 내 추억에 구멍을 크게 내고 말았다. 되돌릴 방법이 없어 꾹꾹 눌러둔 사건이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아쉬움이 압축 비닐팩에서 나온 이불처럼 부풀어 오른다.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은 옛 물건들에 대한 기억을 통째로 잊을 뻔했는데, 소소원에 드나들며 다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스와즈 사강이 작품 속 인물을 통해 던진 질문은 내게도 왔다. 시몽의 질문에 폴이 비로소 지난날 책과 음악을 좋아하던 자신의 모습을 되짚어 보는 것처럼, 소소원을 방문하는 건 내게 골동품을 좋아하던 과거로의 여행이다. 자기장의 끌림처럼 그렇게 소소원은 내게 접혀 있던 시절을 지금으로 불러온다.

매주 화요일, 광교로 넘어가는 길이 설렌다. 호젓한 소소원에서 캘리그라피를 배우며, 지난 시절 속의 나를 만난다. 그곳에 숨 쉬고 있는 결과 온기, 그리고 옛사람을 거쳤을 물건들은 한동안 나를 들뜨게 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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