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를 모시고 양산에 있는 통도사를 찾았다. 부처님 진신 사리를 봉안한 곳. 바람이 쉬는 소나무 숲에서 옷깃을 여미다가 이내 무성한 쑥에 탄성이 터진다. 염불에는 뜻이 없고 잿밥에만 마음이 있는 땡중이 된 격이다.

동네에서 쑥을 찾는 엄마에게 미세먼지를 흠뻑 뒤집어 쓴 쑥으로 무얼 해 먹겠냐고 싫은 소리를 했던 터라 손길이 더 바쁘다. 여린 쑥으로 두둑해진 봉지를 엄마에게 안기고 연락이 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열흘이 지나도 소식이 없다. 맛있게 먹을 생각에 들떴던 마음이 득달같이 달려간다. 어쩌냐. 그 사이 동네 어르신들과 한바탕 잔치를 벌이셨단다. 딸이 떡순이인 걸 잊으셨다고. 아, 내 쑥떡...

쓰린 속을 달래는데 밥이나 먹자고 공선옥 작가가 부른다. 주춤주춤 앉아서 음식 산문집인 《행복한 만찬》을 뒤적인다.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봄이면 무엇에 홀린 듯 온 봄내 나물을 캐러 들로 산으로 쏘다녔다는 그녀.

제 입에 들어오는 음식의 내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로, 몰라도 좋은 상태로 ‘맛있는 것’과 ‘몸에 좋은 것’만을 찾는 요즘 세상의 인심이 얄밉단다. 그리곤 먹는 행위에서 육체적 만족감과 더불어 영혼의 교감으로 얻을 수 있는 행복감이 없다면 배부르지만 불행한 삶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냐고 묻는다.

하긴 마트에서 사온 고구마 한 봉지를 후르륵 씻어 에어프라이어에 간단히 구워 먹는 삶은 문풍지가 바람에 더르르 떠는 밤에 땡땡 언 고구마를 깎아 먹는 삶에 비해 추억의 깊이가 다를 것 같다. 삼월 삼짇날 무렵이면 채반 위에서 꾸덕꾸덕 말라가는 고구마를 누구나 본 건 아닐 테니 말이다.

이렇듯 날것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그 안에 담긴 내력으로 사람을 키우기에 그것들을 둘러싼 환경과 밤과 낮, 바람과 공기와 햇빛, 사람들의 몸짓과 감정까지 담고 싶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이 책에 담긴 스물여섯 조각의 먹을거리는 광주와 여수, 춘천 등으로 옮겨 살던 때 허기진 밤과 그만큼의 세상을 행복으로 수놓았던 소소한 기억들을 차려낸 소박한 밥상인 거다.

그녀와 마주 앉아 수저를 든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는 쌀밥에 시래기국이 짤 수밖에 없었던 이유, 돈부죽 끓이다가 집시랑 태워먹을 뻔 했다는 추억을 얹는다. 환장하게 그리웠다는 방아잎은 지금까지 이 맛을 몰랐다는 게 화가 날 지경이다.

나도 서울 변두리에 살아서 뒷산을 내 집 드나들 듯 했던 시절을 꺼낸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봄이면 으레 동네 아이들과 쑥을 캤다. 햇빛이 잘 드는 무덤 근처와 불에 그슬린 자리에서 많이 돋아난 쑥. 시루에 쪄서 막 꺼낸 쑥버무리를 야금야금 뜯어먹으면서 온 산과 동네를 휘젓고 다녔다.

각자 꺼낸 이야기들로 소박한 밥상이 풍성해진다. 예전에는 도시의 계절과 시골의 계절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걸 알겠다. 그녀의 시절이 그녀를 키웠듯 나의 지난 시절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구나 싶어 참 고맙다.

아쉬운 대로 떡을 한 보따리 산다. 짐을 풀기도 전에 게 눈 감추듯 쑥개떡을 우물거리니 비로소 봄이 나를 꽉 채운 기분이 든다. 이른 더위도 이 기운으로 이겨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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