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변변한 극장 하나 없는 시골에서 자랐다. 1년에 한두 번씩 이동식 천막에서 펼쳐지는 서커스가 찾아오면 그것은 정말 큰 볼거리이지만 언감생심, 돈 내고 들어갈 만큼 여유가 없어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그나마 용감한(?) 친구들은 어찌어찌 개구멍으로 잠입을 감행하여 기필코 서커스를 구경하거나 경비원에게 잡히어 치도곤을 치지만 나는 그런 용기도 없어 천막 주위만 맴돌던 기억이 선명하다.

다만 우리 집이 5일장이 열리는 장터 근처에 있어서 장날에 펼쳐지는 색다른 풍경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무엇보다도 큰 북을 등에 업고 입으로는 하모니카를 불고, 손으로는 또 다른 악기를 다루는 묘기(?)에 넋을 놓았다가도 ‘애들은 가라!’는 약장수의 꾸지람에 자리를 뜨곤 했다.

과도한 화장과 우스운 몸짓의 엿장수의 입담은 더 진화된 모습으로 지금도 종종 볼 수 있지만 그 당시, 어린 나에게는 참 색다른 것이었다. 엿장수의 공연보다 엿판 위에 수북한 엿 한 자루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도 이따금 창이나 만담 같은 공연들이 장터 같은 무대에서 펼쳐지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들이야말로 진정 우리만의 ‘거리극’이라할 수 있다.

지난 5월 4일부터 6일까지 안산국제거리극축제[Ansan Street Arts Festival]가 문화광장 일대에서 펼쳐졌다. 2005년부터 매년 5월 ‘관객과 함께 어우러지는 축제’를 표방하며 펼쳐지는 잔치다. 국내외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펼치는 거리축제 한마당으로 ‘거리에서의 새로운 문화 발견’을 지향하며, 일상의 공간을 예술적 공간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시도다.

매년 거리극 축제에 나는 잠시라도 꼭 한번 씩 의례적으로나마 참여, 축제현장을 둘러보곤 했다. 그러나 이번 축제는 달랐다. 3일 내내 꽤 오랜 시간 축제공간에 있었다. 예년과는 달리 통일포럼과 통일의병의 회원들이 허가를 받아 좌판을 펼치고 자신들이 직접 만든 소품들을 판매한 까닭이다. 3일 내내 이들을 응원하고 이들의 판매를 조금이나마 돕고, 보고 싶은 공연을 골라 보는 재미가 참 좋았다.

덕분에 주변 상인들과 당국의 허가를 받고 좌대에서 장사를 한 분들의 불만을 자연스럽게 들을 수 있었다. ‘장사가 될 만한 소위 목 좋은 곳은 죄다 외지사람들이 선점했다’는 것이 그 분들의 주장이다.

전국적으로 축제 현장을 몰려다니는 외지인들의 안목과 수완을 안산의 아마추어 장사꾼들이 이겨 낼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불편은 안산시민들이 부담하고 수익은 외지 장사꾼이 다 가져간다고 엄살(?)이다.

공연 내용도 외지인 위주로 짜여 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국제거리극축제이니 수준 높은 외국팀들이 다수 와서 공연하는 것이야 나무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안산예술인들이 생산한 무대가 있는 지, 있다면 몇 편이나 되는 지 도무지 가름할 수 없었다.

거리극은 민초들의 삶이 녹아 있는 현장이다. 거리극은 짧고 시사성 있는 내용들을 연기했고, 종종 특정한 시위나 행동을 위해 공연들이 시도되었다. 못된 양반들과 무소불위 권력자들을 공연의 형태로 꾸짖었고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잠시나마 백성들의 시름을 달랬고 민초들은 거리극을 통하여 작은 위로를 받을 수 있었다.

안산거리극축제의 유형을 조금 바꾸어 보면 어떨까? 평소 일터에서 길거리에서, 시위현장에서 안산시민들과 호흡을 함께 했던 작품들을 선보이면 어떨까? 안산지역의 문제점과 주장을 담은 지역연극, 관객들에게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호소하는 정치 지향적 게릴라연극을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선보이면 어떨까?

2019안산국제거리극 축제를 본 짧은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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