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다섯 살 때의 하얀 밤을 기억한다. 한밤중에 웅성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보니,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슬픈 기운이 방안에 가득했다. 낯선 어른들 여럿이 보였고, 아랫목에는 흰 천으로 덮인 뭔가가 있었다. 순간, 동생이 보이지 않는 게 불길해 엄마에게 여쭤보니 어디 보냈다고만 했다.

며칠을 기다려도 동생은 오지 않았다. 오지 않는 동생에 대해 꽤나 집요하게 물었는데,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다. 간간히 우는 엄마에게 어른들이 다시 애를 낳아야 한다며 토닥거렸다. 시시때때로 먼 산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이 아득해졌다. 더 이상 물으면 안 될 것 같아 할 수 없이 궁금증에 누름돌을 지긋이 올려놓았다. 훗날, 그 밤의 의미를 혼자 눈치 챌 때까지 내 생의 처음 기억은 아릿하게 봉인된 채 꽤 오랜 시간을 지나왔다.

입은 닫아 걸었지만 마음속에선 끊임없이 그 기억을 키워갔다. 어느 자리에서 깨어나 어떻게 서성였는지, 덮인 천을 봤을 때의 느낌이 어땠는지에 대한 내 기억은 너무나 또렷하다. 혼자 삭여야 했기에, 어린 나이 때의 기억을 선명하게 갖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에 나오는 폴의 기억에 쉽게 동화된 이유가 유아기 때의 내 아픔 때문일 게다.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 정원>은 대놓고 기억에 관한 영화다. 영화를 시작하기 전에 아예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을 자막으로 내 보냄으로써 관객에게 길 잃지 말고 따라오라고 확성기를 튼다. “기억은 일종의 약국이나 실험실과 유사하다. 아무렇게나 내민 손에 어떤 때는 진정제가, 때론 독약이 잡히기도 한다.” 프루스트의 말대로, 폴은 수면 아래 가라앉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치유를 받기도 하고, 상처를 받기도 한다.

폴은 과거로의 기억 여행을 통해 아빠에 대한 마음을 수정했다. 폴의 희미한 기억 속에서 아빠는 엄마를 때리는 사람이었다. 막상 마담 프루스트의 도움을 받아 기억의 수면 아래로 내려가니, 아빠는 다정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다. 불의의 사고로 떠났지만, 뭐든 폴이 원하는 대로 살기를 바랐던 엄마, 알고 보니 폴을 엄청나게 사랑했던 아빠를 만나고 폴은 치유를 받았다. 아픈 기억 속에 갇혀 사람들에게 마음 문을 닫고 오로지 피아노만을 쳤던 폴은 세상을 향해 서툰 발걸음을 내딛는다.

물론 기억을 끌어오는 게 모두 좋은 건 아니다. 때론 꺼낸 기억이 오히려 상처가 되기도 한다. 피아노가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엄마 아빠가 잘못된 사실을 직면한 폴은, 콩쿠르에서 우승한 가장 빛나는 순간에 피아노 치는 걸 그만 둔다. 헤집어 내기보다 조용히 잠재울 기억이 얼마든지 있지만, 덮어 두는 건 제대로 된 해결책은 아니다. 아물지 않은 상처는 언제나 덧날 수 있다.

많이 아팠다. 살면서 문득 그 하얀 밤이 떠오를 때면 가슴 밑바닥을 훑고 지나가는 아린 마음을 다독일 방법이 없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점차 그 밤의 궁금증을 풀어 볼 용기를 냈던 것 같다. 조심스레 언니와 오빠에게 쉬쉬거렸던 밤을 풀어놓으며 위로를 많이 받았다. 언니와 오빠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나를 놀라워하며, 내가 동생을 많이 좋아했다는 소리도 들려주었다. 동생을 좋아했던 만큼 나는 필사적으로 그 기억을 붙잡고 온 게 뻔하다.

기억은 과거의 것만은 아니다. 과거의 사건을 현재로 불러와 언제든 재생할 수 있기에, 기억이 미치는 범위가 어디까지일지 가늠하기 힘들다. 차마 아직도 묻지 못했지만, 엄마도 기억을 털어낼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아파도 꺼내 씻고, 말리는 과정을 통해 기억도 숙성하는 법이다.

동생에 대한 기억 말고 아픈 기억이 또 뭐가 있을까. 기억의 뿌연 심연을 들여다보며, 낚시를 제대로 해보고 싶은 충동이 인다. 내 기억은 과연 안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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