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하는 공간 '행복'

필자는 봄날을 좋아한다.

하지만 봄날이 서서히 저물고 뜨거운 태양이 우리곁에 다가오고 있다. 세월의 빠름이 때로는 싫다. 그러기에 경계하고 싶을 때도 많다.

저녁을 겸한 술 약속이 있을때 걸어서 이동하거나 택시를 탈 때가 많다. 대리운전도 귀찮고 주차공간도 많지 않아서 불편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 16일(목요일) 오후 5시30분이었다.

필자가 사는 호수마을 아파트에서 영의정 앞을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개인택시였는데 옆자리에 누군가가 앉아 있었다. 얼굴은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분명 여성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런데 조수석 목받침 뒤 A4용지에 손수 쓴 글이 내 눈에 들어왔다. 내용은 이러했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알츠하이머(치매)를 앓고 있는 제 처입니다. 양해를 구합니다'.. 필자는 5분여 시간을 빌어 기사분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필자가 물었다. '앞에 내용을 보니, 가슴이 찡합니다. 이렇게 하루 종일 함께 동승하시나 봅니다. 식사를 어떻게 하시는지요. 부인께서 이런 병을 앓고 계신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어찌 보면 제가 부끄럽고 기사님이 자랑스러움을 느낍니다. 이게 행복 아니겠습니까'.

그러고 난 뒤 기사 분은 밝은 말투로 화답했다. '집사람이 이런 병을 앓고 있는 지는 수년이 흘렀습니다. 철부지 어린 소녀가 된지 오래입니다. 가끔은 떼를 쓰기로 하고 응석을 부리기도 합니다. 나이 들어 소박한 어린아이로 돌아갔으니, 어찌보면 행복인지도 모릅니다'.. 거울을 통해 바라본 기사분의 표정 역시 천진난만했다.

그렇다. 행복이 별거 있겠는가. 아침, 점심, 저녁을 집에서 함께 한다는 그는 언제나 '신혼기분'이라고 너털웃음을 지어보였다.

자녀들이 모두 출가해 아내와 영원히 함께 할 수밖에 없다는 그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그동안 여러 방송에도 소개돼 시민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고 했다. 기억과 인지장애를 불러오는 알츠하이머병은 최근에는 50대 젊은 층에서도 발병되는 무서운 질환으로 알려져 있다.

70%가 유전적 요인으로 발병되는데 안타깝게도 현대 의학으로 치료가 힘든 질환으로 전해진다. 가족의 해체와 가족 간 강력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요즘이다.

며칠 전에는 김포시의회 의장을 지낸 한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폭행해 목숨을 잃게 한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어려울수록 서로 감싸주는 게 다름 아닌 가족이다. 이것은 기본적인 인륜의 법칙이기도 하다. 가족만큼 소중한 구성원은 없다.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아내를 옆에 태우고 하루 종일 택시 영업을 하고 있는 기사분을 보면서 내 자신도 한번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나도 택시기사분의 입장이 되었을 때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가정의 달 5월은 계절의 여왕이기도 하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는 게 가족의 사랑일 지도 모른다. 봄날은 가고 있지만 우리들의 가족은 영원히 우리 곁에 머물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언제나 내 자신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게 가족이라는 진리를 깨닫고 싶어지는 수요일이다. 나도 모르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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