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현관 턱에 걸려 넘어졌다. 무시로 드나들던 문턱인데 새삼스레 넘어지다니. 워낙 덜렁대는 성격을 탓하며 무릎과 양쪽 어깨에 파스를 붙이곤 잊어버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픈 정도가 심해지는 게 아닌가.

그냥 몸살인 줄 알았다. 짬짬이 쉬면 낫겠지. 병원에 가면 반나절을 허비할 텐데 그 시간이 아까워서 어쩌나. 귀찮기도 하고 차라리 잠이나 자자. 그렇게 근 한 달을 버티다 결국 팔을 들 수 없을 지경이 되서야 병원을 찾았다.

각종 검사 후 나온 병명은 어깨 근육 파열. 수술과 주사 치료의 경계에 있다더라. 어떻게 참았느냐는 의사의 말에 그러려니 했다고 대답했다. 일단 주사치료를 하면서 지켜보자는 말에 병원을 들락거리면서 무던한 것과 무신경한 것의 차이를 유심히 본다.

얼마 전에는 삼 만원이면 바꿀 엔진 오일을 십오 만원에 바꿨다. 몇 개월 전부터 차에서 덜덜거리는 소리가 났는데도 미루고 미루다 정비센터를 찾아간 결과다. 늦은 후회가 무슨 소용인가. 이미 엔진은 까맣게 탄 걸.

하필 이즈음 읽은 책이 《이웃집 공룡 볼리바르》(숀 루빈 지음, 황세림 옮김, 스콜라)다. 볼리바르는 지구에 남은 마지막 공룡. 사람들은 공룡이 멸종됐다고 여기지만 뉴욕 웨스트 78번가가 볼리바르의 집이다. 볼리바르는 미술관에 가서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공원을 거니는 게 취미다. 저녁이면 마트에서 장을 보고 밤에는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나가서 음악을 듣는 일상생활을 즐긴다.

도시 한복판에 공룡이 사는 게 가능할까. 대도시라서 가능하다.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이웃집 소녀 시빌이 볼리바르를 알아보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지만 그 짧은 틈을 낼 시간조차 없다.

그런 사람들의 무신경 덕분에 볼리바르는 뉴욕 시장이 된다. 비로소 볼리바르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 사람들. 이제 볼리바르는 위험한 공룡일 뿐이다. 저자는 시빌의 눈으로 묻는다. “당신에게는 진짜 이웃이 있나요?”

그림책을 주문했는데 200페이지가 넘는 책이 반갑다고 안겨서 당황했다. ‘그래픽노블’이라는 낯선 단어를 찾아봤더니 만화와 소설의 중간쯤 되는 형식이란다. 저자는 그림책과 만화책을 적당히 섞어 아이들과 어른들의 마음을 두루 즐겁게 만든다.

대도시의 공룡이라. 기발한 상상에 일단 혀를 내두르고 살짝 보여주곤 사라지는 볼리바르의 흔적을 열심히 찾는다. 착하고 엉뚱한 공룡의 매력에 푹 빠지다 보니 어느새 훌쩍 지나간 시간, 몸이 아픈 것도 잊었다.

만약 볼리바르가 이웃에 산다면 나는 금방 알아챘을까. 아마 코앞에 그 모습을 들이밀기 전에는 결코 알아보지 못했으리라. 아니면 일부만 보곤 전체를 봤다는 착각 속에 살았을지도 모를 일이고.

그냥 바쁘게만 살았구나 싶어서 내 삶이 애잔하다. 일단 아픈 몸을 추스르는 게 우선인 것 같아서 이런저런 가지들을 쳐내는 중이다. 다이어리에 한 칸 두 칸 여백이 생기고 그 여백으로 사람도 보이고 자연도 보인다.

앞으로 빈 공간은 볼리바르를 만나는 일로 채울 거다. 서로가 서로에게 볼리바르가 되는 날 삶은 모래가 풀풀 이는 사막에서 짙푸른 숲으로 변하겠지. 저자가 5년 동안 만들었다는 이 책을 50년 동안 곁에 두고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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