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자기 수준과 상황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삶에 언제나 충실하다. 방향은 항상 성장으로 향하고 있다. 아이들에 대한 답답함이 있다면 단지 지금의 내 기준에 흡족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성장의 방향이 아니라 파괴의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면 그것은 다른 요인이 있기 때문이 다. 문제가 있다면 문제를 지적할 것이 아니라 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을 제거 하거나 다른 영향력을 조성하면 된다.
본래 생명은 늘 생명력이 살아나는 방향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생명력을 억압하거나 왜곡시키는 장애요소만 제거 하면 생명력은 저절로 살아난다. 생명 력이 살아나는 것이 성장이다. 성장은 어제 보다 높거나 깊거나 크거나 좋아 지는 것이다. 아이들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렇다. 생명은 성장하기 위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관점을 견지 해야만 인간에 대한 존엄적 태도를 지킬 수 있다.
‘생체를 구성하는 분자는 빠른 속도로 분해된다... 분자는 환경으로 부터 와서 한때 머무르면서 우리를 만들어 내고 다음 순간에 다시 환경 속으로 분해 되어간다.... 우리의 몸 자체도 끊임 없이 통과하고 있는 분자가 일시적으로 형태를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다.
거기에 있는 흐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 흐름 자체가 살아있다고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이 생명의 특이한 현상에 대해 쇤하이머는 동적평 형이라는 멋진 이름을 붙였다. 생명이란 동적인 평형상태에 있는 시스템이 다’(동적평형, 후쿠오카 신이치) 살아있는 모든 것은 평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항상 움직인다. 평형은 최적의 상태를 의미하고 상태는 왔다가 가는 흐름 이다. 생명은 최적의 상태를 위해 항상 변화한다. 생명의 현상은 일시적이고 흐름이다. 그러므로 결정 되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무엇으로든지 열려있 다. 이것이 생명이다.
518에 이어 416에 대해서 망언이 튀어나왔다. 한 정당이다. 이 지면에 옮기 기도 민망하다. 그 사람의 얼굴을 정밀 하게 살펴보았다. 얼굴이라 함은 얼(정 신)이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굴이 모 여 있어서 얼굴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사람이 어떤 마음과 정신으로 삶을 살아왔는지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다. 외모에 대한 평가는 혼자 은밀하게 할 생각 이다. 다들 좋은 대학을 나왔다. 입신 양명에 성공한 사람들이다. 학교 때부터 부지런히 살았을 것이고 나름 경쟁의 달음박질에 최선을 다 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스스로 지금의 자신이 뿌듯 했을 것이다. 망언은 자랑스러운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라고 이해한다. 안쓰럽고 안쓰럽다. 나는 왜곡된 동적평형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동시에 일시적인 상태라고 믿어본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나의 의식에 인간에 대한 혐오와 배타가 자리 잡기 때문이다. 그들을 정죄하면서 내가 정의라는 오만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간에 대한 희망은 사라지고 타인에 대한 존엄적 태도가 훼손된다. 조금씩 그들과 비스 무리한 사람이 되어 간다.
그들이 그렇게 된 요인은 무엇인가?
입신양명의 출세주의이다. 성과를 나누기 보다는 성과를 독점하는 그 자리를 장악하기 위한 추격주의다. 우리사 회의 오래된 제도와 문화의 퇴적물이 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생명력을 왜곡 시키고 있다.
나는 그들의 망언을 규탄한다. 그러나 나는 한편으로 이들의 행동도 변화의 과정을 걷고 있는 것이라는 의지적 희망을 가져본다. 종교적 측은지심을 발휘해 본다. 목사 냄새를 피우는 위선 이라는 생각도 지나가지만 내가 이런 생각을 갖는 것은 인간에 대한 존엄적 관점을 견지하기 위해서이다. 동시에할 일은 분명하다. 새로운 문화를 조성 하는 일이다. 아픔에 공감하고 연대하며 약자를 우리 사회의 중심과 나의 심장에 자리 잡게 하는 것이다.
오늘 99도씨 3주년 잔치가 있다. 아이들이 직접 디자인했다고 한다. 존엄의 자양분인 자율과 참여의 한마당이 펼쳐진다니 기대가 된다.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것은 바로 그곳을 방문하는 일이다. 오늘도 내일도 나의 길을 간다는 예수의 말이 생각난다. 생명은 오늘도 내일도 항상 성장을 향한 변화의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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