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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가는 길에는
반월신문 | 승인 2019.04.25 17:49

어쩌면 단순한 이유였다. 쪽문 옆의 마른 땅을 일궈 철쭉을 심으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우리’를 보호하는 우리가 좀 있었으면 했다.

오랜 아파트 생활을 정리하고 주택으로 이사하면서 낮은 담이 생소했다. 누가 맘만 먹으면 언제라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담장이 불안했다. 너무 허술해 보여 언제든 경계 밖의 세계에 휘둘릴 것 같았다. 철저하게 개인생활이 보장되는 아파트와 달리 훤히 들여다보이는 주택 생활이 불편했다. 특히 한길로 바로 이어지는 쪽문 쪽은 신경이 많이 쓰였다.

수없이 쪽문 쪽에서 서성였다. 담을 둘러치기엔 답답하고, 그대로 두자니 헐벗은 느낌이어서 하릴없이 발길만 잦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길에서 흔히 조경수로 쓰이는 철쭉을 심어 보자는 생각에 이르렀다. 고민은 많이 하지만 일단 선택을 하면 직진형이어서 그 길로 화원에 들러 색색깔의 철쭉을 사들였다.

철쭉을 심으려는데 생각지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오래 버려진 땅엔 풀들이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어, 그 풀을 뽑아내는 데 한참을 낑낑거려야 했다. 호미로 안 되어 삽으로 풀을 퍼내는데 삽 끝에 걸리는 돌도 많다. 풀을 뽑고, 돌을 골라내고, 풀풀 이는 흙먼지 뒤집어쓰며 땅 고르는데 땀이 뚝뚝 떨어졌다. 가끔 바람이나 오던 고요의 땅에 사람의 손길이 오니, 흙들도 놀랐는지 춤사위가 거칠다. 낯선 생명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듯 거친 숨을 토해내는 흙을 편평하게 다독여 철쭉을 심기까지 몇 번이나 쉬다 하다를 반복했다.

심어 놓고 나니 아늑했다. 훌쩍 뛰어넘으면 아무 소용없을 높이인데도 키 작은 꽃담이 경계 밖과 적당한 거리를 만들어 주며 내 안의 세계를 포근히 감싸 주는 것 같았다. 9년이 지난 지금, 그 꽃담은 한창 성숙해졌다. 바짝 마른 나뭇가지가 빈약해 보여도 물도 주고 가끔 들여다 봐 주었더니, 해마다 꽃수를 늘이며 피고 지던 철쭉이 올해도 풍성하게 꽃을 피워낸다. 덕분에 이 계절, 밖을 보려면 환한 철쭉이 먼저 보인다. 밖을 보는 내 프레임은 더없이 환하고 밝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곱게 피어난 철쭉을 보고 한번쯤 웃으리라.

사람 사이의 관계 맺음도 어쩌면 풀만 무성히 자라는 맨땅의 돌을 골라내고 거친 흙을 매만지며 꽃 심어 피워내는 일인지 모르겠다. 땀을 뻘뻘 흘리며 괜한 짓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은 잠시, 해마다 피어나는 꽃을 보며 환히 웃는 것처럼, 사람 사이에서 피어나는 꽃을 보며 마음이 밝아질 때가 있다. ‘너’를 읽어내려고 정성을 들이는 사이 돈독해진 관계는 즐거운 소통의 꽃을 피워낸다. 소통의 꽃은 세상에 피어나는 꽃만큼이나 마음을 흔들어 놓으며 일상적인 삶을 반짝이게 한다.

요즘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 내 일상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오기도 한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 어떤 인연의 끈을 잡고 있지도 않았는데, 어느 새 난 그 사람들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때론 그 사람들이 있는 언저리에서 설렌 마음으로 발걸음을 종종거리기도 한다. 학연도, 지연도 아닌, 글쓰기 밴드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내겐 맨땅에 꽃 심는 것처럼 정성을 요구하는 일이다. 글을 써 올리고, 남의 글을 읽는 사이, 잠을 놓치기도 일이 밀리기도 일쑤다.

정형화된 틀 없이 글을 통해 정성껏 그려보는 '너'. 뜻하지 않은 인내가 필요할 때도, 낯선 차이로 당황할 때도, 유쾌한 유머에 속이 뻥 뚫릴 때도, 달콤한 공감으로 취할 때도 있다. 그 여러 경우에 나보다는 글을 놓고 간 사람의 마음으로 들어가고자 집중하는 시간들이 소중하고 즐겁다. 9년 전 칼칼한 흙먼지를 마시며 꽃을 심은 마음처럼, 사람 사이 교집합의 공간에 정성을 들이는 시간이 좋다. 오늘도 난 기꺼이 '너'에게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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