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선의의 거짓말을 할 수 도 있다고 하지만 거짓말은 결코 통화지 않는다. 선의의 거짓말은 잠시를 눈속임 할 뿐이다. 어느 젊은 연인이 거짓말 때문에 이별을 하게 된 이야기를 들으면서 역시 거짓말은 안 되지 라는 생각이 더욱 든다. 관계에 따라서는 조금의 거짓말이 감초 같은 역할을 할 거라고 기대는 해보지만 차라리 바른대로 얘기하고 안 될 거면 지금 안되는 게 났겠다. 어느 정도의 관계에서는 진짜 아주 사소한 것도 거짓이 있으면 안 된다. 특히 친구 관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더구나 이성 친구 관계에서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되는 게 거짓말이다. 상대에게 확인하고 싶은 많은 것들에 대해서 밀착 관계일수록 순간순간 많은 것을 같이 공유하고 공감하고 싶어 하는 것이 대부분인 것 같다. 서로의 관심은 관심가질 때가 중요한 것 같다. 관심에서 멀어지면 몸도 멀어지고 마음도 멀어진다. 연인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순간순간 거짓을 말 할 수도 있겠지만 멀리가지 못하는 거 같다. 그렇다고 너무 곧이곧대로만 사는 것도 인생이 재미없다. 물론 인생이 재미가 다는 아니지만 재미없는 생활보단 뭔가 재미있게 산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인생은 연극이라는 말도 있다. 진짜 속마음은 아니지만 진짜 공감 잘하고 잘 표현하는 사람은 보이는 전체를 믿을 수밖에 없다. 표현하는 사람의 표현방법이 진실과 거짓을 말 할 뿐이다, 좀 부실한 표현에 아무리 사실이여도 받아들이는 상대방은 그 것을 알리가 없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모를 때 그 관계는 이미 끝난 거나 다름없다. 진짜 마음은 아프지만 사실을 말 할 때 그 고통에 따르는 결과는 오히려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무서울 수도 있고 더 가벼울 수 있다. 내가 어떤 생각으로 거짓을 말했는지 보다 상대가 진짜로 느끼게끔 표현하면 그냥 일반적 관계는 그 것만을 느끼는 것 같다. 오히려 사실보다 더 인정하고 더 공감하는 건 표현의 차이인 것 같다. 많은 것을 말하고도 실없는 이야기로 가는 가하면 항상 팩트 만을 중요하게 듣는 사람도 있다. 말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 사람과 관계된 사람에게는 엄청난 지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슨 말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건 무슨 상관일까. 다만 거짓말에 당하는 상대방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상대방에게 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서 선의의 거짓말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보인다. 가령 광고 카피에서도 감기여 뚝 하면 진짜 한 번에 뚝 떨어지겠는가? 그만큼 빨리 떨어진다는 얘기겠지. 이정도 쯤 되면 거짓말에 목숨 걸지는 않는다고 봐야한다. 내가 완전히 믿을 때 상대방도 나를 믿을 수가 있는데 서로 그렇지 못하다보면 거짓말이 쌓이게 된다. 그러면서도 잘 사는 사람은 서로가 익숙해진 관계 여서일까? 은폐하고 속이다 보면 공직에 오르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순간 어떤 표현에 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순간의 한마디가 참 중요하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결혼 전에 두 사람 사이의 거짓말은 영원한 이별이 될 수도 있다. 결혼 후에야 자녀를 위해서 부모를 위해서 뭐를 위해서 폭은 참 넓다. 그래서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표현도 하는 것 같은데 그거야 이런 저런 거 다 이해해 줄때야 가능한 거 아닌가. 말하는 사람에게 먼저 좀 더 정확하면 좋겠다. 나라면 어떻게 하겠는가정확한 답일 수도 있겠다. 직접 경험한 사람 앞에 이런저런 표현은 빈틈이 생길 따를 뿐만 아니라 더 이상의 관계마저 그래 될 수도 있다. 동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은 하도 거짓말을 하다 마을 사람이 더는 믿지 않는 다는 내용인데 세 번씩이나 진짜처럼 믿게 하니 그 기술도 대단하다. 현대 사회 같으면 한 번도 믿어 주기 힘든데 거짓말을 세 번씩이나 어겼으니 물론 동화이기는 하지만 대단하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거짓말을 하지 않고 살기란 싶지 않아 보인다. 믿고 안 믿고는 상대가 생각하기 나름이더라도 화해와 용서를 위한 기본은 진실 된 것만 말 하는 수밖에 없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어떻게 할 수는 없더라도 지나온 시간에 대한 충분한 화해와 용서를 위해 다 믿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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