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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음속 번지수
반월신문 | 승인 2019.04.03 11:30

지난 한 달 동안 원곡동을 누비고 다녔다. 음식점을 안내하는 책자에 들어갈 원고를 쓰기 위해서다. 안산역 맞은편에 조성된 다문화음식거리를 포함한 원곡동 일대에는 세계 여러 나라 음식점들이 있는데, 일일이 찾아가 취재를 했다.

안산에 살면서도 처음 가보는 원곡동 거리는 색다른 느낌이었다. 골목의 모습은 익숙한 중소도시의 모습인데, 간판이며 오가는 사람들에게서 외국 느낌이 물씬 났다. 낯선 곳에서 식당 상호, 전화번호, 주소만 들고 찾아가야 했기에, 미리 집에서 지도를 살펴봤는데도, 첫 집을 취재하고 나오니 난감했다. 선과 면으로 되어 있는 지도 위에서는 단순해 보였던 곳이 막상 거리에 서니, 복잡해졌다. 입체로 선 건물들은 시야를 가렸고, 낯선 거리는 방향을 잡을 수 없게 했다. 동행한 사진작가는 무거운 카메라와 삼각대를 양손에 들었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도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뿌연 하늘만큼이나 답답해졌다. 계획된 곳이 60여 곳인데, 매번 헤맬 수는 없는 일이다. 가만히 서서 지도를 살피며, 도형에 꼭짓점을 찍듯 머릿속으로 원곡동 몇 군데에 깃대를 꽂았다. 안산역, 공영주차장, 원곡초등학교, 원곡공원을 방향키 삼아 지도를 다시 내려다보니,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지도를 의지해 조심스레 첫 집을 찾았을 때 짜릿한 쾌감이 들었다. 그 이후로는 막힘이 없었다. 나뭇가지처럼 중심도로에서 뻗어나간 수많은 골목길에 숨어 있던 음식점들을 번지수 하나만 있으면 어디든 찾아갈 수 있었다.

기다린 것처럼 번지수대로 정확히 자리하고 있던 음식점들. 처음에 들었던 쾌감은 시간이 지날수록 신기함과 감동으로 변해갔다. 골목을 조금만 어긋나도 번지수를 제대로 찾을 수 없지만, 번지수가 정확하지 않으면 결코 원하는 집을 찾을 수 없다. 아무렇지 않게 매겨진 것처럼 보였던 숫자는 음식점을 찾아가는 가장 중요한 단서였다.

사람의 마음에도 번지수가 있다. 마음 지도의 번지수는 거리의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세밀해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다양하고 변하기도 한다. 기호, 취미, 경험,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원하는 것 등등 수많은 이정표를 따라 찾은 듯싶다가도 어느덧 놓치는 게 사람에게 이르는 길이다.

반면 아주 사소한 느낌 하나로도 타인에게 깃들 수 있기도 하다. 때로는 “말의 농도가 비슷한 사람이 좋다던” 헤밍웨이의 말처럼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통할 것 같은 사람이 나타나면 단숨에 끌리기도 한다. 지속적일 수 있느냐는 다음 문제다. 말의 감도를 알아채는 것도 수많은 이정표 중 하나일 게 분명하다.

사람 사이에 난 길을 걷는 걸 좋아한다. 좋은 관계에 대해 관심이 많다. 이물 없이 달려가다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여전히 관계에서 얻는 즐거움에 목말라한다. 노후대책 중 하나에 ‘놀아 줄 사람’이 낀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사람 보험 하나는 참 잘 들어놨다고 생각하는데, 가끔 흔들린다. 나와 같은 듯 다른 한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이 크다 보니 헤맬 때가 있다. 그럴 때 사람 마음에 이르는 길에도 번지수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번지수 하나만 믿고 “너, 거기 꼼짝 말고 서 있어. 내가 갈게.” 큰소리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바쁜 발걸음이었지만 원곡동 거리에서 나는 음식점만 본 건 아니다. 짬짬이 골목길을 정겹게 걸으며 좋은 사람과 오래 걷는 법에 대해 숙고했다. 좋아한다면 매일 낯선 번지수를 받아든다 해도 호흡을 가다듬고 지름길을 찾아 나서야 되겠다고. 알 수 없는 그 사람이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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