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라고 부를 때마다 뻣뻣한 마음에 산들바람이 분다. 나 자신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꽃이피는 이 무렵이다. 열심히 주말 쇼핑을계획하고 있는데 《옷장 속 인문학》
(김홍기 글, 중앙books)이 눈에 든다.
인류의 직계 조상인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가 동물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은 걸 감안하면 옷은 인간의 역사만큼 오래됐다. 건축이나 음식을 통해역사를 익히듯 아무 생각 없이 입는다
고 여긴 옷을 통해 인문학으로 가는 것도 의미 있는 일 아닐까.국내 패션 큐레이터 1호인 저자는세상의 모든 사물은 자신의 목소리를지니고 있고 그 목소리로 사람들에게말을 건넨다고 믿는다.
그는 매일 옷장 앞에 서서 ‘누구를만나서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관점을갖고 어떻게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지아는 네가 되었으면 좋겠어.’라는 옷의말을 듣는다고 한다.
1부 제목이 「입는다, 고로 존재한다」인 이유를 알겠다. 옷은 한 인간의삶 전체를 설명하는 사물이자 인간을사회적 존재로 만드는 도구 아닌가. 달리 말하면 옷이 개인의 고고학적인 기억을 담아놓은 화석인 셈이다.
옷장을 보면 그 사람의 삶이 보인다는 말에 궁금증이 생긴다. 열어보니 온통 회색이나 감색, 검은색이다. 한 때무조건 그런 색의 옷을 입었다. 얼마 전부터 주황색이나 빨간색 옷을 사들인
이유와 이제 와서 찢어진 청바지를 즐기는 이유를 내 안에서 찾는다. 그런마음과 생각의 변화를 옷이 말한다니신기하다.
저자는 스타일의 중요성을 누누이이야기한다. 개인의 정체성을 읽어낼수 있고 그 사람의 정신과 기질, 취향을 알 수 있다나. 그래서 코코 샤넬이“대체 불가능한 인간이 되고 싶다면반드시 남과 달라야 한다.”고 말했나보다. 밥을 짓고 집을 짓듯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기준’을 삶에 적용하면서 스타일을 만들어 가라는 말에 귀를 쫑긋 세운다.
그 뿐인가. 옷은 그 시대의 거울과 횃불이었다. 원래 속옷이었던 티셔츠는정치사회적 메시지를 반영하면서 민주주의의 이상을 표현하는 예술작품으로 대접받았고 스니커즈는 남녀의 경
계를 허물고 ‘패션의 민주화’라는 사회적 혁신을 이루어냈다. 부의 상징이던모피를 동물보호 차원에서 바라보게된 것도 바람직한 변화다.
“지퍼가 단추를 대신하면서 인간은새벽에 옷을 갈아입는 동안 그만큼의생각할 시간이 줄었다. 철학적 시간이부족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소설가 레이 브래드버리의 말이다. 최소한 옷을
고르고 입는 시간만큼은 옷이 나를 말한다는 걸 기억하며 찬찬히 살펴보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한 권의 책으로 시대의 역사와 나 자신의 역사를 통찰해 가니 감회가 새롭다. 너무 많은 옷을 사서 그 기쁨을 잃어버렸다는 건 다른 사람의 얘기다. 그렇다고 헐벗은 아픔도 없다. 동네 양아
치가 빨랫줄에 걸린 우리 집 옷들을 훔쳐 도망가기도 했으니까. 사춘기 때끄적거린 나이 든 내 모습은 편안하고은은한 잔향을 지닌 사람. 지금처럼 가기만 하면 비슷해 질수도 있다는 생각
에 나 자신을 쓰담쓰담 안아준다. 가끔은 방금 뿌린 향수 같은 그런 호기도부려 볼 거다.
나를 만드는 건 나만의 옷장을 갖는일, 오늘 입은 옷이 바로 나라는 생각으로 옷장을 연다. 나는 봄이므로 옷도봄이어야 한다. 주르르 훑는 손이 나비처럼 가볍다.
- 기자명 반월신문
- 입력 2019.03.27 13:36
- 수정 2019.03.2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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