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핑계였을 게다. 이런저런 이유를 갖다 대지만, 내게는 전화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동서와 연락이 끊겼던 동안 시어머니는 병마와 싸웠고,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떠났으니, 긴 침묵을 어찌 설명할까.동서와 시동생은 결혼생활을 원만하게 궁굴리지 못했다. 남의 부부 사
이를 함부로 말할 일은 아니지만,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다. 경제적으로도 어려워, 시아버지 연금이나 짬짬이 형제들 돈으로 보태도 살림이 나아지지 않았다. 급기야 둘은 별거를 했고, 그 와중에 시동생이 교통사고가 나 삼도천을 건넜다.
졸지에 아들을 보낸 시어머니는 동서에게 마음을 닫아 걸었다. 시어머니가 시동생 앞으로 들었던 보험을 넘겨주고 동서를 보려 들지 않았다.동서 탓이 아님에도 어디 한풀이라도 해야 황망한 세월을 견뎌내실 것을알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 살 배기 조카와 내쳐진 느낌이었던지동서도 발길을 끊었다. 한동안 동서와 시댁 식구들 간의 유일한 통로나였다. 양쪽 모두의 마음을 알겠기에 이쪽에 저쪽, 저쪽에 이쪽 소식을전하며 조심스레 지냈다. 살얼음판은 어느 순간 와장창 깨졌다. 앙금을풀기도 전에, 시어머니와 동서는 서로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학원을내려는데 자금이 부족했던 동서가 시어머니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나 보다. 일언지하에 거절하는 시어머니에게 거칠게 뱉은 동서의 말은 식구들입을 통해 내게도 전달됐다. “어머니가 그러니까 암에 걸린 거예요.” 차마뱉으면 안 될 말을 붙잡고, 덜컥 겁이 났다.
겨우 붙어 있던 연결고리가 뚝 끊겼다. 나만 보면 은근히 동서와 조카의 안부를 묻던 시어머니는 그 사건 이후로 아예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
겁먹은 나도 동서를 찾아가지 않았고, 전화도 하지 않았다. 말이라는 게상대적인 거라서, 동서가 오죽했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하면서도, 내내 내키지 않았다. 나에게 불똥이 튈까 걱정되었다.동서를 부르자는 내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는 시어머니를 몇 번 더 설득할 수는 없었을까. 시어머니 장례식에 동서를 부르자고 좀 더 강하게말할 순 없었을까. 동서를 가족의 경계 안으로 불러들이고자 했던 내 의지는 약한 거절에도 번번이 꺾였다. 어쩌면 내게 돈을 해달라고 할까 봐겁을 먹어 가족들의 거절에 쉽게 타협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스스로가 맘에 들지 않았다. 쉼 호흡을 크게 하고 오랜만에 동서에게 전화를 걸어 그간 소식을 전하지 못한 미안함을 늘어놓는다. 4년 만에 만난 조카는 몰라보게 컸지만, 바로 나를 알아본다. 키가120센티미터에서 160센티미터가 되도록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쳤는지 모르지만, 나를 바라보는 눈길에 구김살이 없다. 동서가 조카를 참 잘 키웠다.
동서는 바쁘게 달려온 세월에 지쳤는지 잠시 학원을 접는단다. 다시 돌아가기 위해 하던 일을 잠시 쉰다는 동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한 살배기 아들을 중학생으로 키워내기까지 만만치 않은 어려움을 겪었을 게다. 학원에서 늦게까지 아이들을 가르치고 집으로 올 때 허둥댔을 발길,더 주고 싶어 혼자 삼켰을 한숨.예쁘고 고마운 사람. 알량한 방문이 무엇이 그리 좋았다고, 챙겨 주어고맙다고, 내 생각하면서 야무지게 살아내겠다고 마음을 전한다. 만나고
와도 콕콕 찌르는 통증을 어쩌지 못해 끙끙대고 있는 나를 위로한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일에 이렇게 무임승차해도 되는 걸까. 이젠 변명할일을 만들지 않기로 한다. “중랑천에 벚꽃이 참 예쁘게 펴요.” 웃으며 말하는 동서에게 같이 걷자고 했다. 벚꽃 흐드러진 중랑천 길을 빛살 담뿍받으며 걷는 두 여인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벚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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