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도 사랑이다

 

심명옥

 

열세 살 우리 집 언은 사회성이 많이 떨어진다. 어렸을 때부터 산책을 부지런히 시켜 사회성을 길러 주었어야 하는데, 그걸 제대로 못했더니 소심 그 자체다. 어쩌다 산책을 나가면 자기보다 덩치가 한참 작은 강아지도 슬금슬금 피한다. 꼬리치며 반갑다고 따라오는 강아지들도 무조건 경계한다.

오빠네 강아지 소미는 언과 정반대의 성격을 지녔다. 이제 겨우 한 살인 소미는 누구에게든 들이대기 선수다. 사람에게든 강아지에게든. 언과 소미가 만나면 오빤 웃고, 우린 속으로 운다. 천방지축으로 나대는 소미와는 달리 우리 옆에 딱 붙어 소미만 쳐다보는 언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엊그제 소미가 우리 집에 왔다. 여러 번의 만남으로 짖지는 않지만 언은 여전히 소미를 피해 구석으로 피했다. 소미는 안 본 사이 꽤나 컸다. 하얀 털이 매력적으로 자라 당당한 포메라니안 성견이 된 모습이다. 그 사이 새로운 재주도 배워 소미는 “앉아, 일어서, 손, 하이파이브” 같은 말에 반응을 하며 애교를 떤다. 소미 재롱을 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호들갑을 떨고 있는 동안 고구마가 익었다. 언이가 좋아하는 간식인데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소미에게 고구마를 먼저 먹였다. 그리곤 바로 언에게 먹이는데, 통 받아먹질 않는다. 평소 같으면 냉큼 받아먹고 더 달라고 보챌 텐데, 어리둥절했다. 혹시나 소미 먼저 챙긴 내 태도 때문인가 싶어 남편에게 고구마를 먹이게 하니, 언은 바로 받아먹는다.

언은 소미를 먼저 챙긴 내게 토라졌다. 13년을 함께 살면서 오로지 사랑만을 표현해 왔었는데. 잠시 당황했지만 생각해 보니, 언의 태도가 이해가 갔다. 아무 표현 못하고 있었지만 관심과 사랑을 빼앗겼다 생각하니, 맘이 좋진 않았을 테다.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론 대견한 언을 바라보다 문득 오래 된 숙제 하나를 푼다.

형제자매 중 가운데로 자랐다. 오빠와 언니, 그리고 동생 사이에서 난 항상 뒤채였다. 오빠는 남자라고, 언니는 첫딸이라고, 동생은 막내라고 봐 주는데, 내게만은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부모님 때문에 한때 그 사랑을 의심해 본 적이 있다. 엄마는 깨물면 안 아픈 손가락이 어디 있냐고 했지만, 매번 사건사고가 터지면 혼나는 건 나였다. 언니에게 대든다며, 동생 하나 못 봐주냐며 잘못의 화살표는 내게로 향했다.

결핍은 사랑을 불렀다. 나중에서야 가운데 아이로 성장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불만을 가졌음을 알았지만, 이미 나는 사랑을 주고받고 싶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마음을 나눌 대상이 나타나면 욕심을 누르지 않았다. 투정이 아닌, 충만한 사랑 속에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종종 질투가 발목을 잡았다. 좋은 사람 앞에서 마냥 멋진 사람이고 싶은데, 질투를 느끼는 내면을 만나면 복잡해졌다. 일정한 거리에 있는 사람과는 편한데, 좋아할수록 쉽지 않았다. 어린 시절 결핍의 갈증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아, 다가가다 채워지지 않으면 관계를 그만두기도 했다. 사랑의 이면에 질투가 따라올 수도 있는 건데 좋은 사람 콤플렉스에 갇혀 스스로를 괴롭혔다. 어쩌면 말로만 사람 좋아한다고 하면서 속으론 겁먹고 있는지도 모른다.

순정한 언의 행동을 보며 질투는 사랑의 한 이면임을 깨끗하게 인정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좋아하는 것 같으면 당연히 질투가 날 수 있다. 질투를 누르고 안 그런 척, 멋진 척하다 멀어지는 일은 이제 그만이다. 나 사용 설명서를 과감히 고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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