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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는 나의 운명…뜨거운 사랑 영원히 잊지 않을 것”박규채 탤런트 겸 전 영화진흥공사 사장
최제영 기자 | 승인 2019.03.13 10:39

박규채 탤런트 겸 전 영화진흥공사 사장

 

'연기는 나의 운명...뜨거운 사랑 영원히 잊지 않을 것'

 

'박순경' 연기 잊지 못해...'명예순경' 타이틀 보람

야당 대통령 후보 지지...오랜 힘든 생활 가슴 아파

아내와 사별 후 노환에 낙상까지 겹쳐 병원치료 중

외아들 직장 그만두고 곁에서 간호...완쾌 기원

 

1980~1990년대 팬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던 원로 탤런트 박규채(82) 선생님은 보네르빌리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는 야당 대통령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갖가지 핍박을 받은 연예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박규채 선생님이 인터뷰 장소인 커피숍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1980~1990년대 팬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던 원로 탤런트 박규채(82) 선생님은 고잔 신도시 보네르빌리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그는 야댱인 김영삼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갖가지 불이익 등 핍박을 받은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다. 박규채 선생님은 양정고등학교와 고려대를 다니면서 유난히 운동을 좋아했다. 유도 4단에 승마, 사격에도 능했고, 배구선수로도 활동했다. 그토록 단단한 체력을 유지했지만 지금은 몸이 무척 불편하다. 외아들의 부축을 받아야 발걸음을 옮길 정도로 허약한 상태였다. 당뇨와 골다공증 치료를 받던 와중에 얼마전에는 계단에서 넘어져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고 했다. 2년 전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상심이 컸다는 그는 영화진흥공사 사장 재직시 '독립영화 지원 정책'이 보람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큰딸은 미국에서 살고 있지만 병마와 싸우고 있고 둘째딸과 사위는 지방에서 중·고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이라고 했다. 어렵사리 박규채 선생님을 만나 영화같은 인생 얘기를 들어봤다. 아들 박영구씨가 옆자리에 앉아 인터뷰를 도왔다.

 

Q요즘 근황이 궁금하다.
-몸이 안 좋아 병원에 다니고 있다. 14년 전인 2005년에 전립선 암이 발병돼 지금까지 예후를 지켜보면서 병원에서 체크를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당뇨 합병증에 골다공증까지 겹쳐 여러가지로 힘든 상태다. 그러던 와중에 6개월 전 홈플러스에 장을 보러갔다가 넘어져 갈비뼈가 부러졌다. 그래서 1주일에 2차례 정도 고대안산병원과 동네 의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전에는 주변의 지인들과 가끔 만나 식사도 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건강때문에 집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편이다. 좀 답답하긴 하지만 곧 건강이 회복될 거라는 확신을 갖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Q원래 스포츠맨 아닌가.
-맞는 말이다. 양정고등학교와 고려대를 다녔는데, 유도에 능한 편이었다. 한때 배구선수로도 활약을 할 만큼 단단한 체력을 갖고 있었다. 유도 4단에 승마, 사격도 잘하는 편이다. 운동을 좋아했기에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는데, 이렇게 되어버렸다. 아내가 오랜 투병끝에 2년전 세상을 떠났다. 그 이후로 내 건강이 더 악화됐다.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나도 크다. 지금도 아내가 잠들어 있는 부곡동 하늘공원에 자주가곤 한다. 모든게 그리움만 남는다.

 

탤런트 박규채 선생님이 사극에 출연해 열연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Q평생을 연기인으로 살아 왔는데.
-1962년에 데뷔했으니, 아주 오랜 세월이 흘렀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연기생활로 후회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한다. 수많은 팬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지난 날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여러가지 기억이 있지만 MBC ' 제1공화국'을 시작으로 '박순경' '야망의 25시' '제3공화국' 등이 기억에 남는다. 1980∼1990년대 비교적 시대 상황을 풍자한 드라마에 많이 출연했다. 특히 '공주갑부 김갑순' 같은 드라마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드라마로 기억되고 있다. '박순경' 같은 경우는 명예 순경까지 얻는 행운을 가진 드라마였다.

 

Q정치발언으로 핍박을 받았다고 들었다.
-그렇다. 당시 김영삼 야당 대통령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여러가지 불이익을 받고 쫓겨났다. 한참 진행중이던 드라마가 조기에 종영되는 아픔도 겪었다. 나는 내 양심에 따라 김영삼 대통령 후보를 지지했을 뿐인데 그에따른 여파나 핍박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지금은 연예인들이 정치에도 참여하고 지지 또는 반대 선언을 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폭탄 발언이라 할 정도로 파급이 컸다. 내 연기 인생의 기로가 그 때 바뀐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후회는 없다.

 

Q탤런트로 활동하면서 여러 유행어를 만들었다.
-1980년대 드라마에 출연하며 '민나 도로보데스'(모두가 도둑놈이란 뜻의 일본어)를 내가 만들었다(웃음). 그리고 ' 나 돈 없시오' '당신 미인이야요' 등 유행어를 지어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요즘 연기인들은 그런 풍미가 부족해 보여 안타까운 면도 있다. 그 당시 팬들이 내게 준 사랑은 지금도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Q영화진흥공사 사장도 지내지 않았나.
-한때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1997년 영화진흥공사 사장으로 있을 때 여러가지 기억이 남아있다. 남양주 영화 촬영소를 확장하는데 기여했다고 자신한다. 그리고 한국의 독립영화 제작에 관심을 갖고 정부 지원금을 주도록 하는 등의 역할을 했다. 세계시인대회 유치나 베니스 국제 영화제 출품 등도 기억에 남는다. 한편으로는 의미가 있으면서도 뼈아픈 기억도 있다. 노인대학을 설립하고, 대방종합사회복지관을 운영하는 등 다양한 사회활동을 펼쳤다. 한국 평생교육 복지장학회도 그때 만들었다. 그러나 정치적인 이유로 중단되거나 다른 기관으로 넘어가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Q안산과의 인연이 궁금하다.
-20여년 전  정치적인 이유로 아픔을 겪고 안산으로 이주 했다. 안산에 둘째딸이 살고 있었다. 지금은 그 딸이 공주로 이사갔지만 말이다. 상록수 신안아파트로 이사왔는데 참 살기 좋은 곳이라 생각한다. 특히 공원이 많아 산보를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교통편도 좋은 편이라 서울가기도 편리하다. 내가 사는 보네르빌리지 아파트 옆에 '민속공원'이 있는데 아주 아기자기한 공원이다. 봄날이 오면 자주 가보려고 한다.


Q아들이 병간호를 하는데 불편함은 없나.
-아들(박영구)은 천사같은 심성을 갖고 있다. 1남2녀중 막내인데, 여주대학 총무팀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안정 된 직장을 그만두고 나의 병간호에 여념이 없다. 하루 24시 간 내 옆을 지키고 있다. 아버지로써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정성스럽다. 아들은 나를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병원을 가는 등 이동을 할때는 언제나 내 곁에 있다. 대화가 힘들때도 옆에서 도와주고 있다. 오늘 인터뷰도 마찬가지다. 아내가 10년 이상 투병할 때도 역시 아들은 그림자였다.


Q딸들의 근황은 어떤가.
-딸이 둘 있는데, 큰 딸은 미국에서 살고있다. 그런데 암에 걸려 치료중에 있다.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다. 때문에 얼굴을 자주 볼 수가 없다. 제발 건강이 회복되길 빌고 있다. 둘째딸은 공주에 살고 있는데 대전의 한 중학교 교사로 생활하고 있다. 사위는 비봉고등학교 교사다. 자주 볼 수는 없지만 늘 곁에 있는 것처럼 사랑스런 딸들이다.

 

박규채 선생님이 젊은 시설에 근엄한 사극 복장을 하고 있다.


Q마지막으로 한마디 해달라.
-연기인으로 살아온 지난날이 아름답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가끔씩 시를 쓰기도 한다. 문예지 등에 여러편의 시를 실은 적도 있다. 마음이 평화로울 때 아름다운 글귀가 떠오른다. 아내에 대한 그림움도 많다. 연기를 하는 후배들에게는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하는 연기자가 되라고 당부하고 싶다. 어려서 월남했던 나는 안기부 시절 전국을 돌며 반공교육을 한 적도 있다.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나 때문에 고생하는 모습이 애처로울 때가 많다. 나도 전처럼 건강을 되찾길 바라고 있다. 후배 탤런트 한인수씨가 가끔 찾아온다. 의리있는 사나이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Q이번에는 아들인 영구씨에게 물었다. 아버지 박규채 씨는 어떤 분인가.
-아버지는 친구와 사람은 좋아하는 호탕한 성품을 가진 분이다. 한국탤런트 협회장도 하신 분으로 방송계에서 이름을 떨치셨다. 운동을 좋아해서 건강에는 자신한 분이었는데 자식된 도리로서 가슴이 미어진다(이때 눈시울을 붉혔다). 군부대 위문을 간 적이 있는데 장교들이 따라주는 소주 240잔을 연거푸 마신 분이다. 오죽하면 인사불성된 아버지가 혹시나 잘못될까 봐 군의관과 함께 잠을 자게 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 정도로 술을 좋아하셨다. 제발 건강이 회복돼 나랑 전국 여행을 다니는게 소원이다. 어머니가 10년 넘게 암으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다. 완쾌된 줄 알았는데 10년만에 재발하는 바람에 세상을 뜨셨다. 아버지는 어머니 생각을 많이 하고 생활하신다. 마음이 아프다.

 

최제영 기자  cjy1010@ians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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