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겸손해질 때

 

뇌종양. 남편에게 찾아온 병은 낯설었다. 세상에 어울리는 병이 따로 있냐고 물으면 달리 할 말은 없지만 그 때 당시에는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한 젊은 남자에게 어울리진 않는다고 여겼다. 그 병은 소설이나 영화에서 늘 야리야리한 소녀가 앓지 않던가.

암튼 그 병은 덜컥 찾아와서 우리 가족을 사정없이 휘둘러 놓았다. 우리는 잠시 삶의 깜깜한 어둠 속에 갇혔던 거다. 물론 곧 빠져나오긴 했지만 그 때의 절망은 우리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았다. 큰 병을 앓고 나면 삶이 달라진다는 말을 온전히 이해하고 실천하는 모습으로...

그래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올리버 색스 글, 이마고)를 특별한 마음으로 읽었다. 이미 남편의 수술 전 온갖 부작용에 대한 설명을 들은 터라 기본적인 지식이 있다고 여기기도 했고.

하지만 나의 착각이었다. 이 책에는 상상을 넘어선 다양한 신경장애가 나온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의 얼굴과 사물의 형태를 분간할 수 없게 된 남자, 왼쪽만 보지 못하는 여자, 밤마다 침대에서 떨어지는 남자, 갑자기 성적 충동에 사로잡히게 된 90세 할머니, 바흐 전곡을 외우는 백치 등등.

저자는 단순히 독자의 흥미를 끌기 위해 이 책을 펴낸 게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는 ‘의학의 계관 시인’으로 불리지 않았을 거다. 또 많은 대학에서 그가 쓴 글을 윤리학, 철학, 문학 등의 교본으로 사용하지도 않았을 테고.

그는 병마의 도전을 받아 정상적인 기능을 상실하고 일상생활을 단념해야 하는 환자들이 그 나름대로 병마와 싸우며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담으려고 했다. 비록 이길 수 없는 싸움이고 뇌의 기능은 정상으로 되돌릴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인간이라는 사실까지 부정되는 건 옳지 않으니까.

대부분의 임상보고서는 질병이 주인공이고, 인간은 곁가지다. 하지만 그는 인간을 중심에 놓고 질병을 본다. 그리곤 그렇게 해서 다가온 ‘누가’를 우리에게 소개한다. 이 책이 소설처럼 읽히는 것도, 자잘하거나 묵직한 감동이 시도 때도 없이 느껴지는 것도 바로 이런 이야기가 흐르기 때문이다.

동료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기억만으로 이루어진 존재는 아닙니다. 인간은 감정, 의지, 감수성을 갖고 있는 윤리적인 존재입니다. (중략) 당신은 그 마음에 영향을 미쳐 그를 변하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남편이 아프기 전까지 뇌종양은 남의 이야기였다. 내가 딸 둘을 둔 젊은 과부가 될 거란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 없었다. 그런데 그 병은 우리에게 왔고, 우리는 정말 씩씩하게 싸워서 이겼다. 지금은 덤으로 주어진 삶을 기꺼이 즐기는 중이고.

반대로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을 알아보지 못하는 ‘시각인식불능증’에 걸릴 수 있고, 자신이 자신임을 아는 고유감각이 망가져 ‘몸이 없는 채’로 살아가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이 사람들의 이야기는 통째로 내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겸손해진다. 다만 살아갈 뿐, 무엇을 욕심낸다는 말인가. 날선 시선을 부드럽게 둥글리며 겅중거리는 발걸음을 지켜본다. 언제든 멈추게 하려고. 좋은 사람이 쓴 좋은 책을 만나서 내가 사람이 되고 있구나 느끼는 행복한 주말이다.

 

황영주 수필가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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