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크림

심명옥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내 손가락을 쳐다보며 순환이 잘 안 되냐고 묻는다. 살이 쪄서 그런가 보다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손을 숨기기에 바쁘다. 마디도 굵고 결도 곱지 않은, 그렇다고 조막만하지도 않은 손. 밭 한 두럭은 순식간에 매고 나올 듯한 손을 남이 봤다는 사실만으로 주눅이 든다.

불편함을 눈치 채지 못했는지 한술 더 떠 지인은 손을 내놓으란다. 노폐물이 쌓여 손가락이 굵어지는 것이니, 풀어 주어야겠다며. 이리 난감할 수가. 손을 숨겨도 모자를 판에 내놔야 할 상황이라니. 만난 지 30여년이 훌쩍 지난 사이라 쭈뼛거리는 내게 “나를 못 믿는 거냐.”는 지청구가 날아온다. 할 수 없이 조심스레 손을 내놓는다.

불빛은 왜 이렇게 밝은가. 만져주는 사람의 손보다 훨씬 큰 손이 너무 잘 보인다.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지인이 손가락을 하나하나 풀어 비틀 때마다 비명을 터트린다. 아픈 것보다는 구경꾼들이 손을 지켜보는 것을 참을 수 없어, 소리로 묻어버리려는 잔꾀다. 다행히 지켜보던 사람들이 옥타브를 오르내리는 괴성에 지쳐 바라보기를 포기하고 술잔을 기울인다.

사람들 시선은 돌려놨지만 콤플렉스가 슬슬 불거져 나온다. 많이 무뎌지기는 했지만, 나는 다른 사람이 악수를 청하면 손을 잘 내밀지 못한다. 뻣뻣한 감촉에 굵은 손마디를 지닌 손을 뻗어 남에게 선뜻 다가서지 못한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남의 손을 쳐다보지 않는다. 나와 같은 사람이 있을까 싶어 차마 보지 못한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다.

아주 오래 된 일이다. 남이 내 손을 바라보는 걸 부끄러워한다는 걸 자각한 청춘 시절이 손 이야기의 처음은 아니다. 그보다 더 오래 전에 이미 싹이 자라고 있었다. 손이 못생겼다고 남 앞에 손을 내놓는 걸 창피해했던 엄마는 고집스럽게 내 손을 지켜내려고 했다. 얼굴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던 엄마는, “여자는 손이 고와야 한다. 손마디가 굵어서는 안 돼.”라고 하며 집안일을 못하게 했다. 잘살아서가 아니라 같은 아픔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엄마의 오기로 지켜낸 손이다.

오히려 과보호가 독이 된 건 아닐까. 등록금을 보태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뜻밖의 어려움을 만났다. 구인광고를 보고 씩씩하게 치킨 집을 들어설 때도 몰랐는데, 손님 앞에 치킨을 내놓으며 갑자기 손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왠지 손님들이 손만 쳐다보는 것 같았다. 엄마가 아등바등 지켜냈지만 내 손은 문학작품에 나오는 섬섬옥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엄마 말은 알게 모르게 내 안으로 들어와 미의 기준을 세워 놓았다. 엄마 손 닮은 내 손은 그 기준에 미달이었다.

한 번 수면 위로 올라온 콤플렉스는 종종 나를 옥좼다. 데이트를 할 때 손잡은 걸 민망해하거나 악수를 건네는 손에는 핑계를 대기 일쑤였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손을 가꾸질 않았다. 맨손으로 설거지를 하고도 손에 핸드크림 하나 바르지 않았다. 손에 무심한 척 스스로를 속였다. 그러다 보니 습진이 생기고 많이 거칠어졌다. 예상대로라면 점점 손을 숨길 일이 많아진 것이다.

틈만 나면 손에 핸드크림을 바르는 사람이 곁에 있다. 무슨 연유에서 그런지 묻진 않았지만 나와 똑같이 손에 콤플렉스가 있단다. 나는 에둘러 숨기려 애쓰는 것을 그 사람은 당당히 내놓고 다독인다. 무심하게 보아 넘겼는데, 알고 나니, 그 사람은 항상 핸드크림을 갖고 다녔다. 사람마다 콤플렉스를 다루는 방법이 참 다르다. 한 수 배운다.

아무 말 없이 일깨워 준 그 사람이 고마워 핸드크림을 몇 개 산다. 내 것도 여러 개 산다. 왠지 오래 묵은 상처가 아물 것 같다.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건강한 손으로 가꿀 손을 너무 늦게 만난다. 머지않아 손 내미는 게 쉬울 듯도 하다.

 

심명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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