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정치란 한 사회의 자원과 가치 배분에 대한 최종 의사 결정을 함의한다. 인간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한, 그 사회 속에 내재한 다양한 가치와 이익을 조정하는 정치는 불가피한 것이다.

이런 정치를 직업으로 삼는 정치가에 대해 가장 날카로운 정의를 내린 이론가는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다. 베버는 정치가란 ‘악마적 수단’을 통해 ‘천사적 목적’을 실현하는 존재라고 규정한 바 있다. 때로는 원칙으로, 때로는 타협으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게 바로 정치가의 역할이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정치가가 갖춰야 할 미덕은, 베버를 다시 인용하면, ‘열정·책임감·균형감각’이다. 열정과 책임감의 다른 이름은 의지다. 의지가 목표로 삼는 것은 더 나은 국가와 사회로 변화시키겠다는 마음일 것이다.

정치사회학을 공부해온 내게 우리나라 정치가들이 남긴 말들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의 하나는 1997년 대선 텔레비전 토론에서 김대중 후보가 한 연설이다. ‘김대중 자서전’에 나오는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불행히도 저는 세 번이나 도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국민이 저를 이때에 쓰시려고 뽑아 주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는 위기의 강을 건너는 다리가 되겠습니다. 모든 분들이 제 등을 타고 위기의 강을 건너십시오. 저는 다음에는 더 이상 기회가 없습니다. 두 분은 다음에도 기회가 있습니다. 저에게 꼭 한 번 기회를 주십시오.”

그에게 표를 던졌든 던지지 않았든 이 호소는 정치가의 소명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세 차례의 대선 도전에 실패했지만 결코 굴하지 않은 의지의 소유자였던 김대중에게 우리 현대사는 외환위기 극복이라는 과제를 안겼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바탕으로 외환 위기의 덫을 벗어나고 한반도 평화의 길을 열었다.

과학기술 발전이 가속화되는 현재, 인류는 새로운 국가와 사회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변동 속에서도 인류의 운명을 최종 결정하는 정치 및 정치가의 역할에 변함이 없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열정, 책임감, 균형 감각을 갖춘 정치가의 존재는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새로운 대한민국 100년을 이끌어 나갈 정치가를 기다리는 이가 결코 나만은 결코 아닐 것이다.

윤기종 (한국YMCA전국연맹 부이사장/한겨례평화통일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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