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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마당에서
반월신문 | 승인 2019.02.27 10:34

봄이 오는 마당에서

심명옥

 

벌써 바람결이 다르다. 코끝에 달라붙는 느낌이 가볍다. 미세먼지 때문에 겨우내 닫아 놓았던 창문을 활짝 연다. 딱히 맑은 날씨는 아니지만 답답한 공기를 바꿔놓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눈 비비고 마당을 내려다본다. 새들이 목축이고 목욕까지 하느라 분주하다. 날이 풀리니 다른 먹잇감을 찾았는지, 문지방 닳도록 드나들던 숫자는 부쩍 줄었지만 여전히 마당은 새 사랑방이다. 포르르 총총 새들의 날갯짓이나 걸음걸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뿌려 놓은 쌀을 따라 모여든 새들이 차가운 마당을 지켜주어 온기가 돌았다. 꽃 대신 새들이 풀어놓는 이야기가 마당에 풍성하게 흘러넘쳤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 새 구경하다 보니 계절이 훅 지나갔다.

새봄이다. 뜨내기 새의 바톤을 붙박이 식물들이 받아 들 차례다. 마당으로 나가니, 언 땅 비집고 올라오던 복수초가 그 사이 꽃잎을 열었다. 활짝 핀 모습이 예뻐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본다. 꽃잎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 나뭇가지 뚫고 내려앉은 햇살마저도 얼음 뚫고 피어난 용기에 반한 눈치다.

앵두나무 아래 노루귀는 이제야 손을 내민다. 인터넷을 뒤져 30포기 들인 노루귀는 해마다 그 수가 줄어든다. 흰색, 분홍색, 청보라색 골고루 들였는데, 작년부터 청보라색 노루귀가 실종됐다. 겨우 남아 있는 몇 포기여서 더 귀한 노루귀가 땅을 밀어내며 꽃망울을 이고 올라오고 있는 모습이 대견하다. 꽃 피고 지면 노루귀 닮은 잎이 땅을 밀고 올라 올 텐데, 솜털 뽀송뽀송한 모습은 고향 냇가에서 피어나던 버들강아지를 닮았다.

추억과 손잡고 있는 버들강아지. 빨래하러 갔던 엄마는 버들강아지를 꺾어들고 와서는 한껏 들떴었다. "세상에나 이것 봐라. 벌써 봄물이 오르고 있구나." 내가 보기에는 그냥 우중충한 나뭇가지인데, 엄마는 조심스레 항아리에 담고서야 얼굴에 남아 있는 소슬한 바람을 털어냈다. 엄마 말대로, 버들강아지가 부풀어 오르는 동안 봄은 서서히 왔다. 버들강아지의 몸짓은, 진달래꽃보다 먼저 우리 집에 울려 퍼진 봄의 서곡이었다.

봄을 서둘러 집에 들이고 싶었던 엄마의 마음은 내게로 고스란히 와 있다. 바람의 결이 달라지자마자 종종걸음으로 마당을 오가며 생명 있는 것들의 변화를 살핀다. 해마다 반복되는 일이어도 지칠 줄 모른다. 수피樹皮부터 초록물이 배어나오기 시작하면 꽃망울이 부풀고, 햇살을 견딜 수 없어 꽃망울이 터지는 모습은 매번 감동이다. 매화와 홍매화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펼쳐댈 경연에 벌써부터 설렌다.

구석구석 변화가 많다. 조심스레 돋아나는 풀들을 보다 보면 사철나무 울타리에 하얗게 쌓인 새똥은 문제 되지 않는다. 페인트를 뒤집어쓴 것처럼 볼썽사나운 꼴이 되었지만 어찌하랴. 마당을 새에게 내 주면서부터 봄이 올 때마다 겪는 일인 걸. 물로 씻어내도 가시지 않는 고약한 냄새는 너그러운 자연에 내맡긴다. 바람이 씻어내고 햇볕이 말려줄 게다.

꽃망울 따라 흙마저 잔뜩 들떠 올랐다. 킁킁거리며 흙내를 맡는다. 깊이 들이마신 숨에 움츠렸던 겨울의 기운을 얹어 토해낸다. 사람들 사이에서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내느라 돋아난 불편한 감정들을 씻어낸다. 새봄까지 이어가기에 무거운 감정들을 툭 털어낸다.

마당에서 오소소 솜털 솟듯 일어선 봄, 곧 천지사방에 흩뿌릴 봄을 기다린다. 이제 자연은, 제 몸 부풀려 모든 생명 길러내며 계절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가겠지. 화들짝 깨어나 봄 앞에 선다, 봄 마당에 선다.

 

심명옥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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